엊그제 박사과정 지도교수님 (Prof. Yuhwa Lo)과 오랜 시간동안 미팅을 했다.  한국말로 발음하면 ‘유화 로’여서 간혹 한국분인 줄 알고 연락주시는 분들도 계신데, 대만 출신이시다. 대만에서 학부를 마치시고 미국 UC Berkeley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셨고  학위 후엔 Bell Lab과 Cornell University의 전자과 교수를 거쳐로 2000년에 UC San Diego로 옮기셨다.  나는 우리 교수님 연구실에서 2006년부터 2010년 까지 박사과정 학생으로 있었다.  NanoCellect Biomedical Inc.와의 인연도 교수님의 권유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교수님께서 우리 회사의 Chief Scientific Officer 이셨었는데, UCSD에서 교수들의 스타트업 겸직을 허용하지 않는데다, 학교 연구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바쁘시기 때문에 지금은 우리 회사의 Scientific Advisor이자 Board Member로만 활동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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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줄 맨 오른쪽이 내 박사과정 Advisor셨던  Yuhwa Lo 교수님.

서론이 좀 길었는데, 오늘 하고자 하는 얘기는 2011년 가을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이 당시 우리 회사 NanoCellect가 SBIR Phase I Grant 두 개를 받아서 학교 연구실 한 귀퉁이에서 간신히 나와 Jose 둘만 풀타임으로 일하고 , 나머지는 파트타임 엔지니어들을 채용해서 힘겹게 굴러가던 시기였다. 당시 UCSD 기계과 대학원생이 우리 회사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 친구는 비록 석사과정 학생이었지만, 실무 경험이 많고 굉장히 똑똑해서 여러 교수들이 자기 프로젝트에 데려가고 싶어할 정도였다. 당시 이 친구가 우리 회사에서 하던 일은 Solidworks로 간단한 부품을 디자인하고 machine shop에 의뢰하여 제작하고, 레이저, 펌프, 센서 등을 장비 내에 어떻게 배열할 지 디자인하는 일이었다. 파트타임이라 진행 과정이 다소 더디긴 했어도 서로 만족하며 일하고 있었는데, 그만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중요한 데모를 앞두고 이 친구가 약 2주가량 아무 사전 연락도 없이 잠수를 탄 것이었다. 디자인 파일이라도 넘긴 상태에서 잠수를 탄 거면 파일가지고 외부의 machine shop 에 뛰어가서 급행료를 내고 작업을 의뢰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디자인 파일을 거의 완성해야하는 순간부터 2주간 연락두절.  전화도 해보고, 이메일도 보내고 학과에도 연락해보고 친구들도 찾아가보고 했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 집에 무슨 일이 생긴건지, 아님 이 친구가 사고라도 당한건 아닌지, 머리속에서 걱정이 떠나질 않았다.

아무튼, 중요한 데모를 4일인가 5일인가 앞두고 자포자기한 상태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회사에서(그당시 회사는 지도교수님의 연구실 한 귀퉁이 책상 및 랩 벤치…) 교수님과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이 ‘끼이익~’ 학고 열리면서 이 친구가 헬쓱한 얼굴로 들어왔다. 보자마자, 진짜 욕을 한 바가지 해주고 싶었는데, 일단 자초지종이라도 들어보자는 심산에,

“그간 어떻게 된거냐? 연락이 너무 안되어 걱정했다. 무슨 일이냐” 물어보니, 갑자기 이 친구가 눈물을 글썽거리더니 힘든 일이 있어서 그랬다고 미안하다고 한다. 여자친구랑 2주전에 크게 싸우고 헤어졌는데, 너무 사랑했던 여자라서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2주간 식음을 전폐 했다고.  아니, 고작 (물론 그 친구에겐 중요한 일이었겠지만, 나도 그 상황에선 데모, 마감에 대한 압박감에 2주간 미친듯이 시달린 터라 그 친구 마음까진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런 일 때문에 2주간이나 잠수를 타고 회사일을 미루다니!  이 친구한테 서운하기도 하고, 화도 나기 시작했다. 아마 한국이었으면 이런저런 생각할 틈도 없이 바로 육두문자 써가며 욕을 시원하게 날려줬을거다.  내가 성격이 좀 다혈질이라 어렸을 때부터 그 성격 고치라는 말을 많이 들었었는데, 당연히 그랬겠지…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화를 내고 욕을 해도 영어로 해야 하니 일단 ‘뇌를 거치는 과정’에 시간이 5초정도 소요된 듯 하다.  내가 머리 속으로 어떤 욕을 하고 어떤 단어를 써서 화를 낼지 정하고 입을 떼려는 순간, 옆에 계시던 교수님께서 옅은 미소와 함께 이 친구에게 아래와 같이 아주 인자하게 한 말씀 하셨다.

“아, 진짜 힘들겠구나.  나는 결혼 한 지 20년이 넘어서 그런 풋풋하고 아름다운 연애의 감정은 많이 잊어버렸는데, 네 나이때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지는 건 정말 힘든 일이지. 내 아들이랑 딸이 지금 대학생인데 그 친구들도 가끔 그런 일을 겪는 것 같더라고.  그래도 힘든 데 여기까지 와주고, 솔직히 얘기해줘서 고맙다.  얼굴도 많이 상했구나.  오늘은 지금 바로 집으로 돌아가서 재미있는 영화 한 편 보고, 맛있는 저녁도 먹고, 푹 쉬어라.”

당연히 혼나고 욕도 먹을 걸 각오하고 왔는데 이런 말을 들었으니 그 친구는 감정이 더 격해져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내가 교수님께

“아니, 저 친구를 저렇게 보내시면 어떻게 합니까. 일단 나타났으니 앞으로 며칠 죽어라 일해서 데모 일정은 맞추도록 해야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지금같은 마음상태에서는 생산적으로 일할 수 없을거다. 기다려보자. 그리고, 너도 연애시절엔 이런 저런 고민들 많았을 거 아니냐. 이해해 줘야지. 길게 보고 가자”라고 말씀하시며 자리를 뜨셨다. 난 여전히 서운함과 억울함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뭐가 맞는 건지 몰라서 한참을 그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가 퇴근했는데, 집에 와보니 이 친구에게서 이메일이 연달아 와 있었다.

‘정말 미안하다.  데모가 며칠 안 남았는데, 디자인 파일은 거의 다 완성되었으니 내가 주말에 machine shop에 가서 직접 만들 수 있는데 까지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 보겠다’.

그러더니 데모 전날 원래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그래도 봐줄 수 있는 시제품 프레임을 만들어와서 중요한 데모를 그럭저럭 잘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사건 이후, 이 친구의 태도가 확 바뀌어서, 우리 회사 일은 항상 우선적으로 처리하려 노력했고, 특히 우리 교수님에겐 미국 학생들에게서 찾기 힘든 일종의 충성심 같은 것을 보이기 시작했다.  교수님 후광 덕에 내 말도 잘 들어주고, 도와주었고.

아직도 가끔, 만약 교수님이 그 날 그 자리에 안 계셨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아니, 교수님이 말씀을 꺼내기 전에 내가 먼저 얘기를 꺼냈으면 어땠을까?  내 영어가 한국말처럼 유창했다면? 아마 머리로 생각할 틈도 없이 감정 표출하고 욕도 하지 않았을까.  그럼 그 친구도 감정적으로 대응했을테고 결국 우리 회사와 그 친구의 관계는 거기에서 끝이났을거다. 데모도 제대로 못해서 회사 역시 큰 타격을 받았겠지. (그러고보면 영어가 좀 서툰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도 든다. 강제적으로 얼마간 생각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초반의 욱!하고 올라온 감정이 조금은 누그러드니까.) 그 날 교수님께 배운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주려 노력하려는 자세, 함께 일하는 사람을 그 자체로 소중하게 여기는 자세였다. 구성원 숫자가 많지 않고 개개인이 일당백 역할을 해줘야 하는 스타트업에서 인재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그런 마음가짐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 교수님이랑 미팅하다 이 사건(?)이 갑자기 생각나서 블로그에 메모할 겸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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