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Komanduri 교수의 Twitter에 재미있는 포스팅이 올라왔다. University of Pennsylvania (UPenn)의 저 유명한 Carl June 교수가 CAR-T (Chimeric antigen receptor-T) 세포 연구를 주제로 NIH에 제출했던 첫번째 연구 신청서의 심사평 (reviewers’ critiques)을 공개한 것이었다. 세 명의 심사위원이 다양한 이유로 Carl June 교수의 CAR-T 연구 제안서에 대해 비판을 가했고. 결국 ‘CAR-T 연구 관련 세계적인 권위자‘인 Carl June 교수의 첫번째 CAR-T 연구 제안서는 NIH에서 거절되었다.

(CAR-T 는 아주 간단하게만 언급하자면 환자 본인의 혈액 내 T-세포를 꺼내어 특정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도록 조작한 후에 다시 암환자의 몸에 투여하는 ‘면역세포 치료제/차세대 항암제’의 일종이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말하자면 너무 길어지기도 하고, 그렇게 하기엔 내 지식도 딸리는데, 아래 한글로 잘 정리된 Biospectator 김성민 기자님의 기사를 읽어보시길 권해드린다. )

CAR-T가 치료제로써 주목을 받은 것은 2011년 펜실베니아대학 Carl June 교수팀이 진행한 임상 결과로 CD19 항원을 인지하는 2세대 CAR-T를 3명의 말기 만성림프구성백혈병 환자에게 주사했더니 2명에서 완치 효과가 10개월 동안 지속되는 것이 보고됐다. ‘연쇄살인마’ 혹은 ‘살아있는 약물’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도 이때다.

CAR-T 세포, 떠오르는 암세포 ‘연쇄살인마’ (Biospectator) 에서 발췌

Don’t fear rejection of novel ideas!

Critique #1은 “혈액학자 (Hematologist)”에게 조언을 받아 연구 계획을 다시 짤 것을 추천하였고, Critique #2는 Carl June 교수의 그간 연구 업적은 인정하지만 이 연구 제안서에 따르면 연구 그룹이 제안된 CAR-T 관련 주제에 집중하지 못하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한 연구비가 $1.6 million  (한화 약 18억원)에 달하는 중요한 연구 과제인데 연구 책임자 (Principal Investigator)인 Carl June 박사와 David Porter 박사의 인건비가 0.6 months/year로 잡혀있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내비친다. (There appears to be a discrepancy between the amount of effort put forth by the investigators and the amount of funding requested). 게다가 이와 비슷하게 환자의 면역세포를 이용하여 암세포를 공격하는 방법이 이전에도 연구된 적이 많았으나, ‘상용화에 성공한 적이 아직 없음'(None of the cell products previously developed have made it to commercialization and broader use)을 거절의 이유로 제시하기도 했다.  세번째 Critique 역시 이 제안서에 대해, 재미있는 시도 (exciting concept)이나 연구비를 승인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It should NOT be funded as it stands). 마지막으로 위에 열거된 문제점들을 교정한 후에 다시 제출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The investigators should address these concerns and resubmit this appl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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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처음부터 받아들여지기 어려우니 거절당해도 위축되지 말라는 Carl June 교수의 메세지 (이미지 출처: Krishna Komanduri 교수의 Twitter)

CAR-T 연구가 굉장히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많은 제약사들이 앞다퉈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는 지금 의 상황에 비추어보면, 저 당시 심사위원들이 제대로 심사하지 못한 것 처럼 보일 수도 있다.  ‘감히 천하의 Carl June 교수의 CAR-T 관련 연구 제안서를 저런 이유들로 거절하다니?  Carl June 교수에게 ‘hematologist’를 만나 조언을 듣고 연구 계획을 다시 디자인하라고?’ 라며 심사위원들의 무지함을 비웃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Carl June 교수의 명성을 잠시 내려 놓고, 저 당시 CAR-T, CRISPR 등이 유전자 조작 관련 기술들이 지금처럼 무르익지 않았던 상황을 고려하여 Critique을 다시 읽어보면 저 세명의 심사위원들이 아주 터무니 없이 딴지를 건 것은 아니다. Carl June 교수의 제안서 전체를 읽어 보지 않아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위험 (risk)에 대해 Reviewer 로서 해줄만 한 피드백을 준 것이라 본다.  June 교수의 첫 번째 CAR-T 관련 grant 였다는 걸로 봐서는 2010년 이전에 제출한 연구 제안서라 생각되는데 $1.6 million 에 달하는 상당한 금액의 연구비를 지원하는데 있어, 보다 조심스레 접근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완벽한 Peer Review system은 없다

그렇다면, Carl June 교수가 이를 공개한 이유 무엇일까. 분명 NIH의 reviewer들과 NIH 심사 제도를 공격하고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라, “아무리 참신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라 할지라도 처음에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의 저항에 부딪히게 되고 숱한 거절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 때 지레 포기하지 말라“는 메세지를 전하고 싶어서였을것이다.

Don’t fear rejection of novel ideas ( (당신의)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거부감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여기에 더해 ‘심사평을 가감없이 문서로 공개’하는 NIH의 Peer review system에 주목하고 싶다. 아무리 Reviewer pool이 풍부하고, Peer review 프로세스와 심사 제도를 잘 정비되어 있어도 ‘사람’이 일을 하는 이상, 완벽한 심사제도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심사위원들이 ‘신’이 아닌 ‘인간’이므로, 비록  그들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 하더라도 100%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으리란 보장은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박사과정을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같은 연구실에서도 세부 분야가 조금만 달라도 옆 방의 동료가 무얼하는지, 포스닥이 무얼하는지 깊은 수준에서 알기란 매우 어렵다.

그래서, 과제에서 탈락된 사람들은 심사평에 동의하지 못하고, 나아가 심사 제도 자체에 불만을 표시하고, 공정성에 의혹을 품기도 한다. 이것은 세계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위의 경우에서처럼 심사 후에 ‘심사평 (Review summary)’을 서면으로 상세히 공개하면 ‘심사 제도의 불완전함’은 드러날 지언정,  심사 과정에서의 ‘공정성 시비’는 불거지지 않을 것이다. 탈락자의 입장에서 결정이 불공정하다고 느껴질 수 있을지언정, 그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된다면 최소한 ‘짜고치는 고스톱’이라는 오명은 뒤집어 쓰지 않아도 될 것이고,  Peer review system 을 유지하고 개선하기 위한 구성원들의 동의와 신뢰는 얻을 수 있다.  반대로, 심사 과정의 공정성에 의심을 품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신뢰가 깨지는 순간,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에 이르는 미국 정부의 R&D 예산은 ‘눈 먼 돈’으로 전락하게 된다.

탈락된 제안서의 심사평을 한 줄 한 줄 읽어내려가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나 역시 탈락한 SBIR 과제의 심사평을 읽을 때 화도 나고, 부당하다고 느낄  때도 있었지만, 흥분된 감정을 잠시 접어두고 찬찬히 다시 읽어보면 내가 제출했던 제안서에서 무엇이 문제이며, 이것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탈락된 과제들도 내게 도움이 되는 적이 더 많았다. 완벽한 심사 제도란 존재하지 않듯이, 결점이 없는 완벽한 제안서 (Perfect proposal)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니겠는가.

Carl June 교수도 역시 첫번째 제안서가 탈락했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지적된 점들을 수정하여 다음 제안서를 제출했을 것이다. 아래의 표는 Carl June/David Porter 교수가 “CD19 Directed CAR Therapy”라는 주제로 NIH에서 받은 연구 과제 목록이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2백만 달러 이상의 연구비를 NIH에서 받은 것으로 나온다.  과제 제출-심사 및 피드백-문제점 개선의 과정을 거치면서 제출되는 제안서의 수준/질 (Quality)을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 ‘심사 제도’도 조금씩 보완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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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Grantome

역설적이지만, (결국 심사라는 것도 사람이 하는 것이므로) 심사 제도는 불완전할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되,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으로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일, 심사 과정과 심사평 (선정의 이유, 탈락의 이유)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다면, 심사 제도에 어떠한 변형을 가한다 한들 (e.g. 암맹 평가제도 등등) 심사 제도에 대한 공정성은 끊임없이 의심받을 수 밖에 없고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오명은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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