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창업 교육’ 열풍이 분 듯하다. 어느 대학에선 창업을 학위 과정으로 만든다고도 하고, 특정분야 창업을 한 학과로 만든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실제로 시행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창업 학위과정 개설하고 대학창업펀드 160억 조성 (2017년 3월 27일 연합뉴스 기사)
일단 뭐든지 배워서 나쁠거야 없겠다. 배워서 남 주지는 않으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창업하는 것보다야 기본적인 내용 등은 알고 회사를 시작하는게 당연히 도움이 된다. 헌데, 대학생들, 특히 학부생들의 창업을 독려한다는 미명하에 ‘창업 교육’만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마치 레스토랑에서 코스메뉴를 시켰는데, 메인 메뉴는 아주 볼품없는 반면 애피타이저만 지나치게 화려한 느낌이랄까? 물론, 사업자 입장에서 ‘창업 교육’ 사업은 여러모로 매력적이다.
일단 ‘교육’사업이니 어디서든 예산을 따오기도 좋고, 사람들에게 보이기에 그럴싸하다. 성과가 딱 드러나는 사업이기도 하고, 다른 창업 관련 사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하기 쉽다.
반면 창업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인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 사업’ 은 그렇지 않다. ‘창업 생태계를 정부가 인위적으로 조성할 수 있는 것이냐’, 혹은 ‘이 분야가 정부 사업의 영역이 될 수 있을 것이냐’는 질문은 잠시 차치하더라도,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도 막막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정부가 이 역할을 해야 하는데, 사업 추진 당사자가 단기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면 섣불리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추진자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한다 한들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은 없는 반면, 자칫 잘못되었을 때 소위 독박을 쓸 위험이 크기 때문에 딱히 인센티브를 갖기도 힘들다.
허나, 이쯤에서 진지하게 묻고 싶다. 우리 나라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까?
미국에서 기술 기반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SBIR 프로그램 중에 I-Corps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초기 창업자들, 대학원생들/연구자들 대상으로 약 7주간 진행하는 ‘창업 교육’ 과정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력을 갖추고 있고 다년간의 R&D 경험이 있더라도 비즈니스를 해 본적이 없는 초짜/아마추어 창업자들에게 창업은 쉽지 않은 과정이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제공되는 아주 훌륭한 프로그램이다.
이 i-Corps 창업교육 프로그램이 훌륭하다고 칭찬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이 교육 과정을 이수한 예비 창업자들이 실제로 회사를 창업 할 때 이를 지원해줄 수 있는 SBIR 프로그램이 이미 든든하게 자리를 잡고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 과정을 이수하는 예비 창업자은 실제 창업 자금을 SBIR을 통해 확보하고, 창업 초기 어이없는 실수를 방지하는 데 필요한 정보들을 이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얻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업자들이 어디에 더 무게중심을 둘 것인지 분명하다. 바로 이 지점까지가 창업 교육의 역할이다. 만약 SBIR 프로그램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I-Corps라는 교육 프로그램에 치중하여 사업을 진행했다면 과연 이 SBIR 프로그램이 이토록 오래 지속될 수 있었을까?
마찬가지로, SBIR이 미국에서 기술기반 스타트업이 죽음의 계곡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Seed funding으로서 역할을 수행해 올 수 있었던 것도, 리스크가 큰 기술기반 스타트업이 Seed funding을 정부 자금으로 해결하고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하면, 투자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고 이를 이어 받아 투자해 줄 수 있는 Angel, VC 투자자들이 많이 있고, 그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 값내고 소비해 줄 시장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미국의 민간 Angel/VC 투자 생태계가 제대로 조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덜컥 미정부 SBIR만 시행했다면? 기술기반 스타트업의 제품을 적극적으로 소비할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고 대기업의 스타트업 M&A가 활발하지 않다면, SBIR 프로그램이 있다한들 지금처럼 효과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을까? 대학원생/연구원들이 창업한 스타트업의 개수야 한시적으로 늘어나겠지만, 그 회사들의 지속적인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이미지 출처: The 7 Stages of the Startup Life Cycle
위에 그래프 (The 7 Stages of the Startup Life Cycle)에 보이듯이 스타트업 생태계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Growth (성장) 부터 Exit에 이르기까지 창업 이후의 과정이 더 중요한데, 우리는 너무 앞단 (Idea, Startup)에만 치중한 것은 아닌지?
‘창업교육’이 필요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창업교육’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스타트업의 세계를 소개하고 ‘창업’하는 것을 독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학생들이 창업한 스타트업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장기적인 투자를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미국의 창업 메카라 불리는 실리콘 밸리를 벤치마킹 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거꾸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 되돌아 봤으면 한다.
- 샌디에고 쪼박
너무너무 좋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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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시고, 좋은 말씀 남겨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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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좋은글 올려주심에 감사합니다. 박사님께서 올리신 글들을 보고 미국 창업육성 관련 현황 이해에 큰 도움을 받고있습니다. 개별적인 문의사항이 있으나, 이메일 주소를 따로 찾지 못하여 이곳에 댓글로 글을 남기게 되었는데 먼저 양해부탁드립니다. 저는 정부 바이오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진행중인 한국회사에서 근무중이며, 다음주 3월 5-9일에 샌디에고를 방문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외 육성프로그램 현황파악 및 벤치마킹을 주 목적으로 하는 이번 방문에, 박사님께서 혹시 한두시간정도 인터뷰시간을 할애해주실수있으신지 여쭤보고싶습니다. 만약 근무시간중에 어려우시면 근무시간후 저녁시간 등에 저녁식사를 같이 하시면서 진행해도 좋습니다. 가능하실지 고려해주시고, 아래 이메일로 회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yunhee.kang@ip-korea.org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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