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에 내 페이스북 페이지에 아래 내용을 포스팅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한참 ‘김영란 법’ 적용을 놓고 ‘농수축산업계가 타격을 입는다’거나, ‘음식 접대 금액 상한 3만원은 너무하다’ 등의 기사가 막 쏟아져 나올 때였는데 타국에서 지켜보다가 좀 답답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내가 겪었던 사례를 공유한 글이었다.

이 글을 굳이 찾아서 블로그에 옮기는 이유는, 이 글에 나오는 Program Officer 분이 은퇴하신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페북에 있는 글은 나중에 찾기가 어려우니 일단 여기에 옮겨놓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시고 은퇴하셨으니 이제 좀 쉬시고 여행도 하시면 좋겠다.

아래는 페북에 올렸던 글이다.


최근 몇 주간 한국 뉴스 기사들을 보니 최근 ‘김영란법’이 합헌 결정을 받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논란이 되는가보다. 기사 및 사설들을 읽고,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판단해 보면 좋은 취지의 법임은 분명하고, 오히려 초기 원안대로 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미국에서 살면서 드는 생각을 잠깐 적어보면,

우리 회사는 다들 아시다시피 NIH의 SBIR 펀딩으로만 5년이상을 꾸려와서 올해 초 Series A 투자를 받기 전까지는 100% SBIR Grant와 Contract 에 의존해야 했다. 각 Grant 및 Contract마다 연구비를 관장하고 프로젝트를 1-3년간 관리하는 Program Officer/Director (PO/PD)라 불리우는 책임자가 있다. 대부분 그 분야의 박사학위 (PhD or MD) 소지자이고, 오랜 기간 연구하다가 PO가 되거나 중간에 MBA 학위를 받고 SBIR 의 PO로 오는 경우도 많이 봤다.

매년 1월, 4월, 9월 제출되는 NIH SBIR 제안서 리뷰를 마친 뒤 정말로 우수한 것들 (즉 100% 펀딩을 받을 수 있는 것들)을 제외하고, 리뷰어들이 준 점수가 상황상 애매하게 걸린 제안서들이 있다. 아니면 정부 예산 변동에 의해 예년같으면 100% 펀딩을 받을 수 있는데, 예산 삭감으로 아슬아슬하게 걸리는 경우도 있고. 이런 경우 Review 이후 실제 펀딩여부를 결정하는 Advisory Council Meeting에서 담당 PO가 Council member들에게 어떻게 발표하느냐에 따라서 펀딩을 받을 수도 있고, 못 받을 수도 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NIH SBIR 제안서가 평가를 마치고 나면 (Scientific Review Group evaluates scientific merit) 3개월 후 Advisory Council 혹은 Advisory Board에서 ‘승인 (approval)’을 해야 하는 것이다.  즉, Reviewer들은 제안서를 1등부터 100등까지 순위를 매겨서  ‘추천’을 하는 것일 뿐, 당시의 예산이나 다른 상황을 고려해서 Council에서 최종 펀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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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FY18 HHS SBIR-STTR Grant Omnibus Clinical Trial Webinar 2.6.18

예를 들어 내 프로포절의 점수가 애매하게 펀딩 가능성 50:50 인 경우 해당 PO가 ‘이 분야의 연구는 미래를 위해 반드시 지원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Council meeting에서 어필을 한다면 상황이 우리 회사에게 유리하게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와는 반대의 슬픈 상황이 생기기도 하고, 소극적인 PO들은 이렇게 안 하고 그냥 Reviewer들이 준 점수 순서대로 짤라서 펀딩 주고 넘어간다. 하지만, SBIR funding을 운영하는 PO로서 자기 직업에 사명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일하시는 PO 분들과 일할 기회를 운좋게도 여러번 가졌었다. 이 얘기를 왜 길게 하냐면, SBIR 프로그램의 PO가 우리같은 회사에게는 ‘초울트라 갑’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2011년에 우리 회사가 제출했던 NIH SBIR 제안서가 펀딩을 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애매한 Border line에 걸려있던 적이 있었다. 평가 점수상으론 ‘Fundable’하지만 여러 정황을 보았을 때 확신할 수 없어 속이 타들어가는 상황. 이걸 따내지 못하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초울트라 갑’의 위치에 있던 당시 PO는 우리 제안서를 맘에 들어하여 Council meeting에서 설득을 하고 싶어했다. 우리로서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니 마냥 고마울 수 밖에. 며칠 후 그 PO가 우리에게 연락을 해왔다. 내가 샌디에고에 출장을 갈 일이 있는데 직접 당신 회사를 보고, 팀원들도 만나고, 연구실 세팅은 물론이고 회사의 제품 시연까지 보고싶다는 것이었다. 자기도 동료 PO들뿐 아니라 윗선을 설득하려면 정말 꼼꼼하게 due diligence를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OK, 언제든 오시라. 우리는 준비하고 있겠다 말씀드렸다. (물론 회사내부에서는 초비상걸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회사의 명운이 걸린 순간이라는 말은 이런 때 쓰는구나 라고 느꼈다.)

며칠 후 그 분이 방문 일정을 이메일로 보내셨는데, 이메일은 “I don’t want to disturb your routine, so please don’t prepare any special presentations for me”로 시작한다.  ‘나의 방문이 당신들 일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원치 않으니, 따로 발표자료를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게다가 ‘식사나 음료는 일체 준비하지 말아주면 좋겠다. 당신들이 실험하는 장소에서 서서 구경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니 그런 것들 신경쓰지 말라. 음식은 내가 그냥 알아서 사먹겠다.’라고 씌여있었다. ‘I will just grab whatever I can find. So, I hope I won’t cause any trouble’.  내 볼 일만 보고 갈테니까 신경쓰지 말라는 말인데, 으레 하시는 ‘립서비스’겠거니 했다. 그런데 이 분은 진짜 커피 한 잔도 우리가 사는 것을 못하게 하셨다. 캠퍼스에서 파는 그깟 $2짜리 싸구려 커피 한 잔이라도 사드리겠다고 우기는 호세와 나에게 진지한 얼굴로 ‘I can be fired because of this. So, please don’t’. 라고 말씀하셨을 정도다.

Email_Fred
NIH SBIR PO가 보낸 이메일. “I don’t want to disturb your routine”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진짜로 하루 종일 우리들 실험하는 것만 보시고 이것저것 물어보시고 확인 또 확인하신 후, 샌드위치랑 물 한 병만 자기 돈으로 사서 우리랑 점심먹고 바로 다음 약속 장소로 떠나셨다. 이 분만 유별나서 이랬던 것이 아니라, 그 전/후에 만난 정부쪽 분들은 다들 비슷하셨다. 이게 당연한 (최소한 유별나다고 손가락질 받지는 않는) 나라에 12년째 살다보니 지금 한국 김영란법을 둘러싼 논란, 갑론을박이 이해가 잘 안된다. 그게 논란거리라도 되는 건가? 이 법 때문에 농축산 업계에 타격이 클 것이라니, 이런 논리는 또 뭔지, 대놓고 대한민국은 지금 이상으론 깨끗해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인지, 결국은 ‘좋은게 좋은거니 좋게좋게 넘어가자’는 말로밖에 안 들린다.

  • 샌디에고 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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