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한달간 블로그에 SBIR 관련 글을 올리지 않았다.
4월 말부터 5월 초 사이에 2주간 출장을 다녀오느라 바빠서 글을 쓸 짬을 내기가 어려웠던 것도 있지만, 내가 썼던 SBIR 관련 블로그 글들이 온라인 상에서 내 의도와는 다르게, 어떨 때는 정반대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를 본 후 내가 일련의 글을 통해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한 번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해서였다.
그 동안 내 블로그와 페이스북 포스팅을 통해서 미국의 혁신적 기술기반의 스타트업을 지원해주는 SBIR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를 해왔다. 정부가 private sector를 지원해주는 SBIR이라는 프로그램이 다른 곳이 아닌 ‘정글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어떻게 하여 SBIR은 40여년간 꾸준하게 이어져올 수 있었는지를 소개함으로써,
(1) 미국에서 R&D 기반의 스타트업을 시작하시는 한국분들이 이 프로그램을 잘 이용하여 seed 단계를 무사히 넘길 수 있기를 바랬고,
(2) 문제가 많다고 하는 한국 정부의 스타트업 지원사업들이 SBIR 프로그램의 운영 철학과 방법을 제대로 벤치마킹하여 정부의 예산이 제대로 운영되고, 한국 대학 및 연구소에서도 기술기반의 spin-off 스타트업들이 많이 생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바램이었다.
그런데, 몇몇 분들이 내 글을 읽으시고 한국 공무원들을 조롱하거나 무턱대고 비판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모습들을 보았다. 예를 들어, 나는 SBIR 프로그램은 어떻게 공정성을 확보하는가 라는 글에서 ‘과제 평가 및 선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평가 후에는 반드시 평가 보고서와 같은 피드백을 지원자들에게 제공하여 부족했던 부분을 보강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며, 이런 과정을 거침으로써 과제 평가 및 선정 시스템이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그런데 어떤 분이 이 글을 퍼가면서 ‘미국은 이렇게 공정하게 한다. 한국은 공무원들이 적폐라 절대 이렇게 못된다. 지들끼리 짜고 치고’라고 자신의 의견을 달았다. 그 밑에는 내 원문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모를 많은 사람들이 퍼간 분의 의견에 공감하면서 공무원 성토의 장이 벌어졌다. ‘공무원들이 적폐다. 노답이다!’ 과 같은 아주 감정적인 댓글들도 보였다. 이런 일들을 내가 목도한 것만도 몇차례 되니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포함하면 꽤 되었을 것이다. 물론, 정책을 입안하는 공무원이나 진흥원 등 사업 관계자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을 물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이유들도 분명히 있으며, 그 이유에서 우리 모두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미국의 SBIR 프로그램과는 달리, 한국에서 평가위원들을 공개하지 못하고, 평가 후 보고서를 지원자들에게 보내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에서 정부 과제 담당자분들을 대상으로 SBIR 관련 강연이나 발표를 하고나면 많은 분들이 내게 말씀하시길 ‘한국은 한 분야가 너무 좁아서,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으며, 한 번 찍히면 매장되기 쉽기에 심사위원들의 신원이 공개되면 아무도 심사위원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탄하신다. 전문가가 자신의 전문적인 식견에 근거하여 의견을 내는 것을 주저하고, 심지어는 두려워 하기까지 하는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는 누가 만든 것인가?
가끔 한국에서 오신 분들께서 만나자고 요청하셔서 만나면, (물론 가끔이지만) 동행한 어린 직원들이나 심지어는 대학원생들이 동석한 자리임에도, ‘정부의 스타트업 지원지원금은 눈 먼 돈이니 먼저 먹는 놈이 임자다’라는 말을 버젓이 하는 경우들을 가끔 보는데, 정부 지원 정책자금을 눈먼 돈으로 바라보는 이러한 후진적인 인식도 공무원 혹은 진흥원 과제 담당자가 책임져야하는 문제일까?
어떤 분들은 한국 정부 공무원들은 미국 SBIR program officer 들처럼 잠재력을 가진 스타트업에 돈을 지원해주고 성공할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리지 못한다고 비난하는데, 정작 우리 사회는 그렇게 진득하게 기다려 줄 수 있는가? 세금을 투입했는데도 가시적인 성과가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과에 대해 납세자로서 우리는 기다려 줄 수 있는가? 정책 담당 공무원들이 보다 길게 보지 못하고 근시안적인 것이 그들만의 잘못인지, 우리 자신을 한 번 되돌아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공무원들의 리더쉽만 중요한 것인가? 우리들의 팔로워쉽은 어떤가?
2014년에 한국에 출장을 갔다가 우연한 기회에 미래부 공무원들 분들을 대상으로 SBIR 및 미국 R&D 기반 스타트업 지원 제도에 대해 발표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전까진 나 역시도 여기저기서 들은 말들 때문에 공무원 사회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참석했던 분들의 진지한 태도와 발표 후에 이어졌던 날카로운 질문과 대화를 통해 생각이 많이 바뀌게되었다. 모두는 아닐지라도 정부 안에는 제대로 창업 정책을 시행해 보고자 노력하는 공무원들이 많다. 다만, 그 분들도 공무원 사회 특유의 경직성과 싸워야 하고, 개인적으로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시행하는데 대한 두려움과 망설임을 넘어서야 하며, 자신이 낸 아이디어가 실패했을 때 가해질 비난과 문책에 대한 두려움도 이겨내야 한다. 그리고, 혹 정책이 성공하더라도 공무원 개인에겐 별다른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에 선뜻 강하게 주장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날 이후로, 그런 분들이 뚝심을 가지고 정부 내에서 목소리를 내고, 제대로 된 정책을 세워 장기적인 안목에서 일할 수 있도록 벤치마킹을 할 수 있는 SBIR과 같은 모범사례를 공유하고, 외부에서 건설적인 비판과 대안을 제공하며,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 및 운영과정을 모니터링하는 시민들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 블로그도 그러한 목적으로 2015년에 시작한 것이다. 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나의 이런 생각에 모두 동의하셔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턱대고 누군가를 비난하기에 앞서 한 번쯤 생각해주셨으면 하는 생각에서 글을 하나 써보았다.
PS) 설령 극단적으로 공무원 분들의 잘못이 100%라고 가정하더라도, 그렇게 ‘공무원들이 적폐다, 노답이다!’ 등으로 감정섞인 비난을 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분들이 비난하기 쉬운 타겟이기도 하고, 공무원들로부터 겪은 기분 나빴던 경험등이 투영되어 그들을 비난할 수는 있지만, 차분하게 생각해 보면, 결국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는 것은 정부의 담당 공무원들이 아닌가. 비난은 문제를 푸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감정 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 샌디에고 쪼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