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말에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학회와 전시회에 참가했었다.  매년 열리는 행사인만큼 우리 회사가 속한 분야 (image & flow cytometer – 영상 및 유세포 분석기)의 회사들과 연구자들이 다들 모인다.  참석자들은 서로 경쟁하기도 하지만 세포 분석이라는 분야를 발전시킨다는 큰 틀안에서 서로 만나 교류하는 것이 큰 목적 중의 하나이다.  나는 2012년부터 7년째 이 행사에 참석하고 있는데, 참석자 수가 1500-2000여명 정도로 작은 학회이다보니 꾸준히 참석하는 회사 사람들이나 연구자들과는 이제 대부분 얼굴도 알고 어떤 일을 하는지도 알아서 서로 안부도 묻고 정보도 주고받고 한다.  전시회 마지막 날, 체코의 유명한 맥주를 앞에 두고 사람들끼리 모여서 이런 저런 주제로 수다를 떨다가, 지금은 대기업에 피인수된 모 스타트업 회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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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보스턴에서 열렸던 전시회에서 우리 회사 제품을 홍보하고 있는 내 모습 🙂

미국 서부의 ‘A’ 사는 2000년대 중반에 설립된, 세포 분석 장비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이었다. 이 회사 A의 창업자인 D와 O는 각각 엔지니어, 생명공학 전공자였는데, 하드웨어 스타트업이다보니 초반에 사업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다가 우여곡절 끝에 시리즈 A 투자를 받게되었다고 한다. 그리고나서, 투자자들의 제안으로 제품 상용화 및 세일즈 담당 팀을 구성하고 이끌어줄 적임자를 찾던 중에 이 쪽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인 B를 CEO로 전격 영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둘 사이의 짧은 허니문 기간이 끝나자마자, ‘굴러온 돌’인 CEO B와 ‘박힌 돌’인 창업자 D, O 사이에 갈등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시장보다 너무 앞서간 제품은 위험하다.”

이사회에 의해 외부에서 영입된 CEO인 B의 생각은, “현재 개발중인 제품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은 획기적인 제품인 것은 맞으나, 가격이 너무 높은데다가, 시장이 존재하는지 아닌지도 아직 불분명한 리스크가 있으니, 개발과 검증에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몇가지 기능 빼고 단순하게 가자”는 것이었다.  “기술 스펙에서 양보를 좀 하되, 가격을 낮추는데 초점을 맞추면 지금 대기업에서 나오는 제품들보다 훨씬 더 인기가 많을것이고, 여기에서 나오는 매출과 이익을 발판으로 신제품은 추후에 출시하자. CEO인 나를 믿고 현재의 비즈니스 모델 수정하자. 현재 제품이 제공하는 고급 기능을 필요로 하는 연구자, 고객들이 있다는 증거도 없지 않느냐?”고 창업자들과 이사회를 설득했다고 한다. 

“우리의 혁신적 기술과 제품으로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던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반면, 창업자인 D와 O의 의견은 정반대였다고 한다. CEO인 B가 주장하는대로 핵심 기능 몇가지를 빼면 그건 더이상 자신들이 만드려던 제품이 아니고, 제품 가격을 낮추어 보급형 제품을 출시하는 것은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도 아니다. 우리 회사가 지닌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핵심 기능이 없는 제품들은 이미 시장에 존재하며, 이는 레드 오션에 뛰어드는 격이다. 게다가 가격 낮추는 거는 중국 회사들이 조만간 바로 치고 들어올건데, 설령 운이 따라서 잘 되더라도 몇년 못간다.”지금 우리 제품을 필요로 하는 연구자들이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건 시장에 우리가 제공하는 기능을 갖춘 제품이 없었기 때문이지, 우리가 시제품을 출시하고, 이 동네에 있는 대학교의 생명공학과 내에 얼리어답터 연구 그룹이랑 공동연구 진행하여 의미있는 결과를 논문으로 내면 분명 시장은 우리에게 호의적으로 응답할거다” 라고 주장했다고 한다.“시장보다 너무 앞서간 제품은 위험하다.” vs. “우리의 혁신적 제품으로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던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이 두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다가, 결국 창업자인 D와 O가 이사회를 통해 B를 해고하고 회사에서 내쫓았다. 졸지에 해고 당한 B는, 결국 자신이 주장한 비즈니스 모델 (가격을 낮춘 제품으로 승부하는 것)을 채택한 미 중부의 스타트업 ‘AC’ 의 CCO (Chief Commercial Officer)로 합류하였다..정반대의 의견을 갖고 있던 두 사람이었으므로 이별은 처음부터 이미 예정되었던 수순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궁금한 점은 “둘 중에 과연 어느 회사가 성공할 것인가?” 였는데, 2011년, B가 CCO로 합류한 스타트업 ‘AC’가 한 대기업에 2200억원에 피인수되었다.  업계 사람들은 “역시 B의 말이 맞았던 것인가!” 라고 쑥덕대기 시작했는데, 그로부터 약 6개월 후에 D와 O가 이끌던 스타트업 A 역시 대기업 M 사에 1700억원에 피인수되었다.

B의 의견도 맞았고, D&O도 주장도 맞았다.

비즈니스에서 이것이 옳고 저것은 그르다 라고 딱 가르기가 애매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싶다. Eric Ries가 자신의 책 Lean Startup과 The Startup Way에서 정의하듯이, 스타트업은 극단적인 불확실성 (Extreme Uncertainty)을 안고서 나아가는 것인데, 여기에서 비즈니스 모델가지고 옥신각신하느라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대신, 최대한 빨리 구성원간 합의를 하여 방향을 설정하고,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구성원들까지 리드하여 아주 디테일한 게획을 세운 후, 그 계획을 제대로 실행 (execution)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옳은 계획은 없지만 옳은 실행은 있다고 할 수 있겠다.그리고, 결과론이지만 저 때 대판 싸우고서 둘이 헤어지고서, B가 A를 떠나 AC에 조인한 것이 두 회사 모두에게 최상의 결과를 가져다 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사회를 통해 B를 해고하려고 했을 때, D와 O는 이 시도가 실패할 경우 자신들이 오히려 해고될 수도 있음을 각오하고 벌인 일이었는데, 이렇게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않고, 계속 비즈니스 방향가지고 싸우기만 하고 그 어떤 계획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면 저 회사는 성공적으로 exit하지 못했을 것이다.

  • 샌디에고 쪼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