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과정동안 그래도 연구가 순조롭게 되어서 논문 몇 편을 출판하고, UCSD의 TTO (Tech Transfer Office)를 통해서 특허 출원까지 마친 후, 교수님과 나는 스타트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참고로 내 박사 학위 논문 제목은 “Lab-on-a-chip flow cytometer and microfluidic fluorescence activated cell sorter (μFACS) for biomedical applications (2010)” 인데, 이게 우리 회사 NanoCellect Biomedical의 첫번째 제품인 WOLF Cell Sorter (세포 분석기) 개발의 시작이다.
기술은 이렇게 확보가 되었으니, 함께 할 팀 멤버를 찾는 것이 다음 순서였다.
교수님께서 “성환, 너와 나는 둘 다 엔지니어라서 제품을 만드는 것은 잘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생명 공학에 대해선 잘 모른다. 우리 제품의 고객은 대학이나 연구소의 생명공학자들이니 그들의 needs를 파악하고 그들과 communication을 잘 하려면 생명공학을 전공한 파트너들과 함께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옳은 말씀이라 이 분야에서 팀 멤버들을 수소문하다가, UCSD의 Bing Ren 교수의 소개로 지금 우리 회사의 President인 Jose, COO를 맡고 있는 William, 그리고 초기에 Interim CFO를 맡았다가 지금은 회사를 떠난 Nate를 만나게 되었다. 이 세 친구는 모두 UCSD에서 Cancer Biology, Neuroscience, Genomics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거나 학위를 마무리하는 중이었는데, 모두 학계에 남기보단 스타트업을 해보고자 하는 욕심이 있는 친구들이었다. 회사 이름은 이들과 논의 끝에 NanoSort 로 지었다. 그러나 이 이름은 2012년에 다른 회사와 작은 분쟁이 있어서 우리가 회사이름을 바꿔야만 했고, 부득이하게 NanoCellect Biomedical로 바꿨다 (나는 이 바뀐 이름을 훨씬 더 좋아한다). 아무튼 엔지니어링-생명공학을 아우르는 Multi-disciplinary founding team이 꾸려졌다고 다들 기뻐하며 이제 투자를 받아 제품 개발을 시작하면 되겠다며 의욕에 차 있었다.

Know Yourself! – 투자자를 만나며 얻은 교훈
여러 번 이야기했듯이 샌디에고에는 CONNECT, EvoNexus와 같은 훌륭한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나 인큐베이터가 있는데, 우리는 이들이 주최하는 여러 행사들에 참석하고, 온라인으로 귀동냥한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 회사 소개 자료를 만들어서 무턱대고 샌디에고의 VC, Angel Investor, 대기업의 문을 두드리고 다니기 시작했었다. 이러기를 한 달. 처음의 기대와는 달리 우리 생각대로 되어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서서히 느끼게 되었다.
자신만만하게 피칭을 시작한 우리들 이었지만, 투자자들이 보기에는
- 우리의 ‘기술력’이라는 것은 ‘시장에서 검증되지 않은, 실험실에서나 구현 가능한 컨셉’ 정도에 지나지 않았고,
- 박사 학위 소지자들인 창업자들 역시 ‘가방 끈만 길고, 직장 생활을 해본 적이 없고 자기 주장만 강한 아마추어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제품을 개발해 본 경험은 전무하니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투자를 하겠는가!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막연한 낙관만으로 투자자들 만나서 우리의 설익은 계획을 떠들고 다녔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봐도 참 어이없을 정도로 우리는 무모하고 순진했었다. 그에 비해, 투자자들은 냉정했고, 매우 프로페셔널했다.
물론, 무작정 투자자를 만나고 대기업 연구개발 담당자들에게 피칭을 했던 이 무모한 노력이 아무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만났던 투자자들 대부분이 우리의 계획에 굉장히 비관적이긴 했지만 피드백을 꼭 주셨다. 우리는 이 피드백을 꼼꼼히 받아적고 미팅에서 돌아오면 다시 리뷰하면서 우리가 무엇이 부족한지, 어떤 부분을 우선 순위에 두고 일을 진행해 가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우리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었다. 그 때 그들의 지적은 혹독하게 아팠지만, 바쁜 일정 중에도 우리의 발표를 들어주고, 아픈 지적을 해주었던 분들 모두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내가 블로그에서도, 소셜 미디어에서도 틈날 때마다 ‘스타트업 지원 과제 선정을 마치고 나면 반드시 지원자들에게 피드백을 주시라‘고 당부하는 것도, 그런 피드백들이 스타트업에게 얼마나 피가 되고 살이 되는지를 실제로 겪었기 때문이다.
(피드백을 받는 입장에서도, 물론 그들의 조언이 듣기 좋을리는 없겠지만, 바쁜 시간을 내어 피칭을 들어주고 피드백을 주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고 열린 자세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피드백을 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나의 자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스타트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지속적으로 수정하는 것. 이를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내 준 숙제를 먼저 해내자
우리가 만났던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우리 애송이 창업팀이 시제품을 하나 잘 만들어서 고객들을 대상으로 테스트 해 봄으로써, 아래 질문 중 1, 2, 3 번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를 검증하고 싶어했다. 그럼으로써 기술적인 리스크와 창업 팀에 대한 리스크를 어느정도 낮춘 후에 다시 이야기를 하고자 했었다.
- 당신들의 기술이 상용화가 가능한가? 시장은 존재하는가?
- 창업팀이 비즈니스 경험이 있는가?
- 시제품을 만들어서 Product-Market fit 여부를 테스트 해볼 수 있는가?
다시 말하면 이는 우리들이 소위 말하는 MVP (Minimum Viable Product) 시제품을 만들어 고객들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해보기 전까지는 투자자를 만나는 것은 시간과 인력 낭비일 뿐이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1, 2, 3 번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가 찾지 못한다면, 4, 5, 6 번 질문은 대답을 들을 필요조차 없으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게 정의가 되었다. MVP 시제품을 만들자!
그런데, 시제품을 만드려고 하니 당장 돈이 문제였다.
어림짐작해서 시제품을 하나 만드는데 들어가는 레이저나, 광학 필터, 렌즈, 회로기판 등의 부품값만 계산해도 4-5만불 (4,500-5,500 만원)이 드는데다, 나와 CEO의 인건비 (아주 최소로 잡더라도), 실험실 렌트비, 특허 관련 비용 등등을 생각하니, 못해도 10만불 가량의 돈은 있어야 겨우 시제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상황은 다시 또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가방 끈만 길었지, 모아놓은 돈도 없었고, 부모님들이나 친구들에게 돈을 빌릴 상황도 아니었다. 거기에 이제 막 대학원 마친 애송이들에게 수 억 원의 돈을 대출해 줄 은행도 없다.
고민 끝에 Rhevision에서 일했을 때의 기억을 되살려, 미국 정부의 기술 기반 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SBIR (Small Business Innovation Research)에 지원하여 Seed 자금을 마련하기로 결정하고, 당장 NIH (National Institute of Health – 미국립 보건원)의 SBIR 과제 제안서부터 작성하기 시작했다. NIH SBIR 과제를 제출하고 선정되어 지원금을 받는 데까지 6-9개월이 걸리므로 우리 셋은 낮에는 각자의 직장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고 밤과 주말을 이용해서 William의 차고에서 모여 NIH SBIR 과제 제안서를 작성하고 NanoCellect 업무를 보는 생활을 1년 가량 했었다. 그러다가, 2011년 여름에 정말로 운 좋게도 우리가 제출했던 SBIR Phase I 과제 3개가 한꺼번에 선정되면서 Jose와 나는 그동안 일하던 직장에 사직서를 내고, NanoCellect의 Full-time Employee #1, #2 가 되었다 (Jose가 한 달 먼저 시작해서 #1 이고 내가 사번 #2 이다).
우리 회사에 Seed 펀딩을 제공해 준 SBIR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를 통해 여러번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보고 싶으신 분은 아래 링크를 따라가시면 된다.
-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런치 클럽 강연 영상: https://youtu.be/dYoPs0GmF7E
-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런치 클럽 발표 자료: https://goo.gl/WCEh4m
- 샌디에고 쪼박
정말 재미있습니다. 기술 창업(Tech-driven Entrepreneurship)의 귀한 사례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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