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다시 불붙어서 블로그에 SBIR에 대한 글을 올리고 페북에다 공유하고 있는데, 페친이신 정재호 이사님이
- 영수증 풀칠 없음
- 심지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포션도 있음 (과제 총액의 7% 내에서 사용가능한 fee/profit)
- 단, 미국 시스템이 그렇듯 부정하면 응징
이라고 기막히게 요약을 해 주셨다. 그래서 오늘은 마지막 부분인 ‘미국 시스템이 그렇듯 부정하면 응징‘ 부분에 대해 글을 써보려 한다. SBIR 과제를 지원하거나 운영하면서 부정을 저지르면 어떤 처벌을 받는지 한 번 살펴보자.
얼마 전 뉴스에서 시카고의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20만 달러 (2억 4천만원)의 SBIR 펀딩을 받기 위해 허위 서류를 제출했다가 적발되어 기소 되었다. 재판 끝에 이 사람은 자기의 유죄를 인정했으며, 판사는 이에 3개월간 징역을 선고하고 부정하게 받은 20만 달러를 회수하도록 조치하였다.
기사: Chicago software developer gets 3 months for lying to obtain $200K in grant (시카고의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2억 4천만원의 정부 연구자금을 받기 위해 거짓말을 하여 3개월 징역에 처해짐)
시카고에 거주하는 미로슬라브 벨레브 (Miroslave Velev) 라는 사람은 Aries Design Automation LLC 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였다. 미국 살면서 가끔 놀라는데, 이런 범죄가 발생하면 범죄자의 신상을 꽤 상세하게 공개한다. 이름, 회사, 직위 심지어는 얼굴도 떡하니 공개한다. 궁금해서 구글링을 해보니 아래 회사 홈페이지가 뜬다. 보면 NASA, 미 국방부 등에서 contract를 받아 연구개발을 수행하는 회사인 것 같다.
좀 더 궁금해서 그럼 이 회사가 SBIR을 얼마나 받았는지 검색해 보았다. 아래 표에서 보이듯이 Aries Design Automation LLC는 2006년부터 2013년 사이에만 DOD (국방부), DOE (에너지부), NASA (항공 우주국), NSF (과학재단) 등으로부터 17개의 SBIR 펀딩을 받았고, 총 과제 액수는 수십억원에 달한다. 이런 회사가 어쩌다가 SBIR 부정을 저지르게 되었을까?

사건의 전말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이 회사가 미국 과학 재단 (NSF)과 항공 우주국 (NASA) 의 SBIR 프로그램에 지원했는데, 이 프로그램은 특이하게 미국 정부가 아닌 민간의 투자를 받았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조항이 지원자격에 있었다고 한다. The program required companies that applied “to show independent, third-party investments or commitments of investment in their projects.” Aries는 이 당시에 외부에서 투자를 받지는 못했으나, Velev는 20만 달러의 돈이 너무나 필요했는지 그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만다.
Velev는 자신의 회사인 Aries 은행 계좌에 투자금이 들어온 화면을 캡춰하여 SBIR 지원서에 포함하여 제출하였는데, 조사 결과 그 돈은 외부 투자사에서 들어온 투자금이 아니라, Velev 자신의 개인 은행 계좌에서 보낸 돈임이 밝혀졌다. 즉 자신의 개인 계좌에서 회사 계좌로 돈을 이체하고는 ‘외부 투자를 유치했다’고 속여서 허위로 지원 자격을 충족시키고는 NASA, NSF 로부터 20만 달러의 SBIR 연구 자금을 받은 것이다. 심지어 SBIR 연구 제안서 포함된 ‘investment letter’에 나온 이 ‘유령 투자사’의 CFO는 투자와는 관계없는 사람이었고, 그저 Velev 아내가 아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When Velev pleaded guilty, he admitted to lying about receiving that required investment and submitting a screenshot of his firm’s bank account that appeared to show that the necessary cash had been transferred from an outside investor. But there was no investor, and Velev had actually sent his own money to the account to make it look like he’d received an investment.
Velev was sentenced to three months in federal prison on Wednesday, prosecutors said. He previously had to pay restitution of $150,000 to NASA and $50,000 to the National Space Foundation.
재판에 회부된 끝에 결국 Velev는 유죄를 인정했고, 3개월의 실형을 받고 연방 감옥에 수감되었다. 판사는 판결문에서 ‘Velev가 위조한 투자관련 문건과 스크린 캡춰가 아니었다면 20만 달러의 과제를 수주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3개월 징역에 더해 부정하게 받은 20만 달러를 NASA 와 NSF 에 다시 돌려주도록 명령하였다. (이 건에 대해 법무부 홈페이지에 올린 내용). Velev 는 이제 감옥에서 나오더라도 더 이상 SBIR 을 포함하여 미국 정부의 어떤 과제에도 지원할 수 없으며, Software engineer로서의 커리어도 끝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누가 이런 사람을 채용하거나 파트너로 함께 하고자 하겠는가.
이 건 하나에서 보듯이, SBIR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명백한 부정을 저지른 회사 대표는 결국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 이 사람이 얼마나 훌륭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고, 이전에는 이런 부정을 저지른 적이 없는 ‘초범’ 이라고 봐주는 것 같지는 않다. SBIR 과제를 수행하는데 최대한 자율성을 확보해주고, Paperwork도 줄여줄테니 대신 과제를 잘 수행하는데 전념하되, 어느 선을 넘지는 마라, 부정을 저지르면 법대로 처벌된다는 메세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인 것 같아 여기에 소개했다. 이 모든 과정을 뉴스나 법무부 홈페이지를 통해 상세하게 공개되는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범죄자는 처벌받지만, 규칙을 지키는 사람은 의심받지 않는다
더 놀라운 점은 이 사건 이후에 SBIR 과제를 수행하는 다른 회사들에게 별다른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저런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을 적발했는데, SBIR 과제 수행하는 당신들도 이런 비슷한 짓을 했을지 모르니, 혹은 미래에 그럴 지도 모르니 우리가 전수조사를 해야겠다, 당신들의 서류가 모두가 원본이라는 공증을 해라, 등과 같은 요구가 있을법도 한데 그렇지 않아 의아했다. 여기서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적발하게 강하게 처벌, 응징하면 될 일이지 규칙을 잘 지키고 정당하게 사업하는 사람들까지 이유없이 의심하고 쓸 데 없는 절차나 규제 등을 만들어서 무고한 회사들이 엉뚱하게 일종의 ‘연대책임’을 지게 하지 않는다.
아쉽지만 한국은 이와는 반대로 부정을 저지른 당사자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아무 죄도 없는 대다수의 연구자들, 스타트업 회사들이 억울하게 잠재적 부정행위 대상자로 몰려 자신들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불합리한 규정들 (흔히들 말하는 영수증 풀칠, 영수증 원본 제출 요구 등)을 감내해야 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이 쓸 데 없는 행정적인 일에 시간을 쓰게되고 과제 연구 생산성이 저해된다. 이러다 보니 정부 과제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는 불만도 나온다. 게다가 이를 감시하는 과제 담당자도 상당한 시간을 여기에 할애하는 웃지못할 촌극이 벌어진다.
결국 잘못을 저지른 소수의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규칙을 잘 지키는 대다수 무고한 사람들까지 한 데 묶어 의심하느라 아까운 시간과 인력을 낭비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처벌받아야 할 사람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양심적인 사람들이 자신들의 무고함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 반복되다 보니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만 바보가 되는 이상한 풍조도 만연하게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Photo by Bill Oxford on Unsplash
- 샌디에고 쪼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