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오링고 (Duolingo)라는 앱으로 스페인어를 공부한 지 딱 1년이 되었다.
딸이 고등학교에 입학해 제 2 외국어로 스페인어를 배웠다. 캘리포니아 샌디에고에 살다보니 학교에 히스패닉 학생들이 많은데 이 친구들은 스페인어를 거의 모국어 수준으로 한다. 스페인어를 배워본 적이 없는 아이가 이런 친구들과 함께 스페인어 수업을 듣다보니 수준차이가 너무 심하게 나서 딸이 스페인어 수업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스페인어 수업 성적도 안 좋고, 성적이 안 좋으니 수업은 더 재미없고,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수학이나 물리 성적이 안 좋으면 내가 도와주면 될텐데, 스페인어는 나도 배워 본 적이 없어 딱히 도와줄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한참 고민하다가 이번 기회에 딸이랑 함께 스페인어 공부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을 해보니 미국인들이 외국어를 배울 때 듀오링고를 많이 사용한다고 하길래, 바로 앱을 깔고 free trial로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했다.
앱을 통해 스페인어를 조금씩 배우다보니 이게 게임처럼 재미있게 배울 수 있게 되어있어 부담없이 진도를 매일 조금씩 나갈 수 있었다. 1주일 정도 매일 15-20분 정도 듀오링고를 사용해 본 후 딸에게도 듀오링고를 써볼 것을 권유했다. 아빠가 스페인어를 하나도 못하니 너를 직접 도와줄 수는 없지만, 대신 듀오링고로 매일 함께 공부하면 어떨까 물어보았다. 별로 내키지 않아하는 딸에게 보상을 하나 걸었다. 지금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한 4년간 아빠랑 매일 듀오링고로 스페인어를 공부한 후 함께 스페인 여행을 가자고. 작년에 가족 여행으로 스페인 빌바오에 다녀왔는데, 우리 딸은 빌바오와 산세바스티안을 너무너무 좋아했었기 때문에 나의 제안을 듣고는 바로 수락했다.
그 때부터 딸과 나의 매일 아침 스페인어 공부가 시작되었고,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와 아들도 합류해서 지금은 한 달에 $9.99 (Family Membership)내고 온 가족이 각자 페이스에 맞게 스페인어 공부를 매일 조금씩 하고 있다.
다행히도 딸은 듀오링고로 조금씩이나마 스페인어를 매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자신감과 흥미를 조금씩 되찾기 시작했고, 학교의 스페인어 수업에서도 진도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친하게 지내는 히스패닉 친구들에게 도움을 부탁하기도 하면서 학기말에는 스페인어에서 A 학점을 받았다. 스페인어 까막눈인 엄마와 아빠가 매일 함께 듀오링고로 스페인어 공부하면서 어설프게나마 집에서 스페인어로만 이야기하는 연습을 한 것도 도움이 된 것 같았다.
딸 스페인어 공부 도와주려 시작한 듀오링고였는데, 나도 스페인어를 배우는 것이 무척 즐거웠다. 부담갖지 않고, 한국에서 영어 배울 때 처럼 문법이랑 단어 외우는 방식이 아니라 듀오링고 앱에서 시키는대로 읽고 듣고 게임하듯이 매일 15분에서 30분씩 짬날 때마다 공부했더니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다. 샌디에고의 많은 지명들이 스페인어로 되어있는데, 길 가다 표지판을 보면 ‘아, 이게 이런 뜻이구나’ 라고 이해하게 된다. La Jolla는 보석, Del Mar는 바다의, La Mesa는 테이블 등등.
회사에도 히스패닉 동료들이 많은데, 내가 가끔 스페인어로 이야기를 건네면 다들 재미있어하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고 한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Buenos Dias (좋은 아침) 라고 인사하는 나를 붙잡고 오늘 배운 스페인어 한 문장 해보라며 다그치기도 한다. 금요일 아침에 날 보면 Es viernes y mi cuerpo lo sabe (오늘 금요일이야! 내 몸이 이미 (불금을) 알고있어!) 라면서 농담을 건네기도 하고, 조만간 주말에 함께 Tijuana (티후아나)로 놀러가서 타코랑 랍스터 먹고 오자며 (타코와 랍스터를 사달라고!) 조르는 친구들도 생겼다.
이렇게 스페인어를 배우니 재미가 없을 리가 없다. 타일러가 한 TV 프로에서 ‘언어는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슥듭하는 것이다’ 라고 했는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를 대략 알 것 같다. 한국에서 중고등학교 시절 영어를 ‘학습’했다면, 지금은 듀오링고로 스페인어를 ‘슥듭’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재미있게 스페인어를 배우고 직접 써보기도 하다보니 어느새 365일 연속으로 듀오링고 앱을 사용했다며 듀오링고에서 배지를 보내주었다. 아니, 대체 이게 뭐라고 🙂 작은 성취감도 느껴지고, 딸에게 아빠로서 모범(?)을 보여줬다는 뿌듯함도 느껴진다.
요즘 스페인어가 조금 지겨워질 때면 이탈리아어와 독일어도 틈틈이 습득하려 한다. 이탈리아어는 스페인어와 유사해서 배우기에 약간 수월하다. 독일어는 고등학교 때 제 2외국어로 배웠고, 회사일로 독일, 오스트리아 출장을 자주 다니면서 조금씩 복습을 하긴 했는데 듀오링고로 리프레쉬 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3년 후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둘이 배낭 메고 스페인으로 여행가서 스페인어로만 대화하며 스페인 이곳 저곳을 함께 여행하는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 날이 곧 오기를 🙂
- 샌디에고 쪼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