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블로그 첫번째 글에서 (링크) SBIR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인 1982년에 연간 R&D 예산이 $100밀리언 이상되는 정부기관이 총 예산의 2.5%를 (갈수록 조금씩 늘어가고 있는데, 2017년부터 2022년 사이엔 3.2%까지 예산이 증가했습니다) 혁신적인 기술기반의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지원을 지원하는데 쓰도록 법제화 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1982년이 SBIR이 미의회를 통과하여 법제화되기까지, 십수년 간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이를 반대하는 진영과의 치열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Birth & History of the SBIR Program에 그 내용이 잘 요약되어 있어서 여기에 소개합니다. 인물을 중심으로 소개해 놓았네요.
[1] SBIR의 아버지, Roland Tibbetts
Roland Tibbetts는 대학을 마치고 하이테크 회사에서 20여년간 일하다가 1972년에 미국 국립 과학재단 (NSF:National Science Foundation)의 Senior Program Officer로 임명됩니다. 여기에서 본인의 경험을 살려 기존의 패러다임을 흔드는 이른바 게임 체인징 (game changing) 기술 프로젝트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줍니다. 특히 훌륭한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들이 정부의 R&D 예산을 받아 리스크가 큰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NSF 내부에서 반대를 무릅쓰고 지속적으로 SBIR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현재 SBIR의 3단계 시스템 역시 Tibbetts의 아이디어였다고 하니 그 비전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1974년에 처음으로 NSF에서 SBIR 프로그램이 승인이 되었는데, Tibbetts는 1976년부터 1996년까지 20년간 NSF SBIR 프로그램의 매니저로서 근무하며 초기에 SBIR이 자리를 잡고, 1982년 미국이 모든 정부기관이 SBIR에 예산을 편성하도록 하는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Tibbetts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매년 미국정부에서는 SBIR 펀딩을 통해 성공을 거둔 회사를 뽑아 Tibbetts Award를 시상합니다.
[2] Edward Kennedy 상원의원 – NSF SBIR 프로그램의 초석을 닦다.
Edward Kennedy 상원의원 역시 SBIR의 역사에서 빠져서는 안되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Tibbetts와 마찬가지로 혁신적 기술기반의 회사들을 정부의 R&D 예산으로 지원하는 것이 미국의 경제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인식한 Kennedy 의원은 1970년대에 NSF내 sub-committee 의장으로서 Tibbetts를 도와 NSF SBIR 프로그램 탄생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SBIR에 배정되는 예산의 규모를 늘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법안을 상정하고 의회 및 정부기관을 상대로 로비활동을 하는 등 다각도로 노력한 끝에, 미 정부기관 중 NSF 가 SBIR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3] Ronald Reagan 대통령
파일럿 프로그램의 성격이 짙던 NSF SBIR 이 큰 성공을 거두자 1979년에 미국 Small Business Administration은 다른 정부기관들 역시 NSF처럼 SBIR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의회 및 행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도 Kennedy 상원의원이 총대를 메고 진두지휘하여 연간 연구개발 예산이 $100M 이상인 정부기관은 예산의 2.4%를 (현재는 2.8%이상) SBIR에 배정하는 안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상정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정부 예산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대학 등 학계의 반발이 심했으나, 결국 1982년 Ronal Reagan 대통령이 SBIR 법안에 서명을 하여 현재까지 33년간 이어지게 됩니다.
1982년 이후로 오늘까지 SBIR을 통해서 약 7만여개의 특허가 등록되었으며, 700여개의 회사가 IPO에 성공했고, $41B (약 50조원)에 해당하는 벤처캐피탈 투자를 유도하는 등, 혁신적인 기술기반의 미국 스타트업 성공의 토양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 샌디에고 쪼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