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요즘 유행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음악에 재능이 있는 일반인들이 심사위원 앞에서 노래를 부른 후, 심사위원들의 심사평 즉 피드백을 듣게 됩니다. 심사위원들은 그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가수나 작곡가 혹은 무대감독, 평론가 등으로 구성되죠. 당연히 누가 어떻게 심사하는지는 방송으로 공개됩니다. 심사위원마다 각자의 선정 기준이 있습니다. 성량이 풍부한 것을 중시하는 심사위원도 있고, 노래할 때 ‘공기 반, 노래 반’ 섞여 있어야 후한 점수를 주는 심사위원도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5/05/20150505024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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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음악에 재능이 있어 프로 가수로 성장할 만한 재목이라면,  ‘잘하네요. 다음 라운드로 통과’라는 결과만 듣는 것보다는 ‘음색이 굉장히 매력적인데 반해, 호흡이 조금 딸리는 것 같다. 이 부분을 보완하면 크게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와 같은 구체적인 심사평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반면, 안타깝게도 노래에 별로 재능이 없는 지원자는 다소 혹독한 평가를 받고 처음에는 낙심하겠지만, 길게 본다면 성공 가능성이 별로 없는 곳에서 오랜기간 방황하기 보다는 빨리 다른 길을 찾는 것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좋아하는 것을 한다고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결국 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목적은 많은 가수 지원자 중에서 오직 ‘실력’을 바탕으로 뽑아보자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Shark Tank와 같은 스타트업 오디션 프로그램도 이와 비슷합니다. 각 심사위원마다 각자 다른 심사기준이 있고, 출연자의 피치(pitch)를 들은 후 결과와 함께 피드백을 전달합니다 – “당신의 아이디어가 맘에 드니 투자하겠다, 혹은 당신 아이디어의 이런 저런 점들이 구체적이지 못해 신뢰가 가지 않아 투자하지 않겠다.”

성공할 법한 아이디어들도 있고 가끔씩은 투자에 문외한인 제가 봐도 헛웃음이 나오는 황당한 아이디어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정말 말도 안되는 아이디어를 가져온 출연자는 진지하게 생각하고 출연을 결정했을터이니 솔직하게 심사평 (피드백)을 들려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그 사람이 쏟은 시간과 노력에 대한 예의이고, 또 솔직히 피드백을 주어야 더 이상 시간낭비 안하고 아이디어를 조금 더 다듬거나, 다른 길을 찾지 않겠습니까.

이미지 출처: www.hollywoodrepor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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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SBIR 에 지원한 스타트업의 지원서를 심사하는 과정도 이와 비슷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선 제가 SBIR 프로그램에 지원한다면, 심사기준 (Review criteria)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겠죠.

  1. Significance: 제안서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2. Investigator: 연구 책임자 (PI, Principal Investigator)와 공동 연구 책임자 (co-PI)가 해당 연구과제를 수행할 능력이 갖추어져 있는가?
  3. Innovation: 문제해결을 위해 제안한 기술이 얼마나 혁신적인가?
  4. Approach: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은 잘 짜여져 있는가, 실험은 잘 계획되어 있는가, 잠재적인 위험요소에 대한 검토는 했는가? 
  5. Environment: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각종 장비, 연구 인프라는 잘 갖추어져 있는가?

위의 심사 기준에 맞추어 최선을 다해 제안서를 작성하여 제출한 후에는 누가 우리 제안서를 심사하는지 알고싶을겁니다. SBIR 지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우리 회사는 약 10% 밖에 안되는 성공 확률을 보고 꽤 큰 위험부담을 안은 상태에서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쏟게되니 항상 시간에 쫓기는 스타트업에겐 일종의 도박입니다. 물론 ‘진인사 대천명’이라고 저희가 최선을 다한 후에는 저희 손을 떠났으니 결과는 심사를 주관하는 NIH의 결정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단, 제안서에 대한 심사가 공정하게 이루어졌다는 전제하에 말입니다. 심사의 공정성을 위한 가장 중요한 첫번째 단추가 바로 ‘공정한 심사를 수행할 수 있는 심사단 구성’입니다. 심사위원단 구성이 편파적이어서 운동 종목에서도 부정이 일어나고,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듯이, 심사위원을 제대로 선정해야 최소한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심사위원들의 피드백을 지원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과제에 선정 여부와 관계 없이 피드백은 꼭, 반드시 전달해줘야 합니다. 첫번째 이유는 제안서를 작성하기 위해 스타트업 회사가 90%의 탈락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였기 때문입니다. 항상 시간과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스타트업이 무려 50페이지 (Phase II는 그 이상)에 달하는 제안서를 제출했는데, 이를 심사한 후에 Yes 혹은 No 만 알려주는 것은, 제안서를 제출한 회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정이 안 되었다면 왜 탈락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최소한 말해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공기 반 소리 반’이어야 하는데, 당신은 공기의 비중이 10% 밖에 안되기 때문에 떨어진다라던가, 심사평과 함께 탈락 이유를 알려줘야 수긍을 하고 다음 계획을 세울 것 아닙니까)

애초에 과제를 두고 경쟁이 심하니, 과제에 선정되지 않은 90%의 회사들은 실망하고 낙담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당연히 ‘왜’ 우리 회사의 제안서가 선정되지 않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는데, 별다른 피드백이 없이 ‘이번에는 경쟁이 심해서 어쩔 수 없었다’ 혹은 ‘프로그램의 방향과 맞지 않아 부득이 하게 선정할 수 없었다’라고만 연락이 오게 되면 심사과정의 공정성을 의심하게 됩니다. 누가 심사위원으로 있더니만 회사 A가 특혜를 받았다더라 등등. 이게 사실이건 아니건 이런 일들이 반복되기 시작하면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 피해는 모두에게 돌아갑니다.

심사위원의 심사평, 즉 피드백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회사가 다음 단계 계획을 세우고 중장기 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운 좋게 선정이 되더라도 연구 계획이나 상용화 계획의 헛점을 지적해주고 보다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피드백을 받게된다면 저희 회사가 SBIR 과제를 제대로 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심사에서 탈락했다면,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가에 대한 피드백을 자세히 읽어보고 그 부분들을 보강하여 3개월 후에 다시 제출하여 두번째 기회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만약, Significance 항목에서 아주 낮은 점수를 받았다면, 저희 회사는 프로젝트 전략을 재검토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경우에는 무리해서 다음 사이클에 다시 제안서를 제출하지 않는 것이 낫겠지요. 전략을 수정하면 아예 새로운 제안서를 제출하는 것이 나을테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도 좋고 시장도 큰데,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기까지 어떻게 테스트를 진행하겠다는 구체적인 방법 (Approach 항목)이 불분명하게 기술되었다거나, Product development를 해 본 경험이 없는 창업자들의 한계를 지적한 경우 (Principal Investigator 항목)등이라면, 약점으로 지적된 항목을 보완하여 다시 지원할 수도 있습니다. Product development 경험이 많은 엔지니어를 고용하거나 컨설턴트로 계약을 맺을 수도 있고, 아니면 product development를 주로 하는 회사에게 SBIR 지원금의 일부를 주고 용역 계약을 맺을 수도 있죠.  저희도 이 방법을 써서 약점을 보강하여 두번째 시도에서 좋은 리뷰를 받게되었습니다.

과제 심사 후 피드백을 지원자와 공유하게 되면 SBIR 예산을 가장 효율적으로 집행해야하는 정부에게도 도움이 되어 큰 틀에서 선순환 구조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심사과정에 의심을 받게되면 우수한 기술력을 갖춘 민간의 투자를 받을만한 능력이 되는 회사들은 정부 펀딩을 기대하지 않고 다음부터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정부과제를 신청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별다른 기술력도 없는 회사들이 다른 편법을 통해 정부자금을 노리고 과제를 신청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정부과제에 신청하는 제안서의 수준이 점점 낮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고만 고만한 회사들 중에서 골라서 예산을 지원해주어야 하니, 비효율적으로 예산이 집행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기술력이 뛰어나 응당 지원을 받아야 할 A급의 회사는 정부 과제를 받지 못하고 버티다가 겪지 않아야 할 어려움을 겪게될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받을 자격이 되지 않으나 (즉 기술력도 떨어지고 개발제품의 시장도 크지 않은데) 운이 좋아서 혹은 편법을 통해 정부지원금을 받는 B급, C급 회사는 결국에는 정부지원에만 의존하는 좀비회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런 회사를 일컬어 Grantpreneur (Grant+Entrepreneur)라고 합니다. 씁쓸하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명제는 여기에도 적용됩니다.

솔직한 피드백을 지원자에게 전달해 줌으로써 스타트업 회사가 잘못하고 있는 부분을 지적하고 개선방향을 제시해주면 스타트업은 피드백을 바탕으로 수정된 높은 수준의 제안서들을 다시 제출하게 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NIH로서도 누구를 뽑아야 하나를 놓고 행복한 고민을 하게될 것입니다.

그럼 왜 서로 솔직하게 피드백을 주고 받는게 잘 안될까?

아직 솔직하게 의견을 주고 받는 문화에 한국인들이 익숙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경우에 거절을 개인적인 감정을 섞어 받아들이거든요. 저희 회사가 미국 투자자를 상대로 NanoCellect에 투자를 제안하는 프리젠테이션을 마친 후 대부분 거절을 당했는데, 그 때 거절의 이유 (긍정적인 피드백 + 부정적인 피드백)와 함께 꼭 듣는 말이 있습니다. ‘Do not take this personally’ 입니다.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 투자자들의 투자 방향과 맞지 않거나, 시장규모가 그리 큰 것 같지 않아서 투자가 어렵다는 것이지 당신들이 싫어서 이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비즈니스는 비즈니스, 개인적인 관계는 개인적인 관계, 확실하게 구분되고 그렇게 냉정한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이 프로페셔널한 자세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서로 감정을 상하지 않고 솔직하게 피드백을 주고 받았으니, 지금은 함께 하지 못해도 계속해서 서로 연락을 주고 받습니다. 이번에 투자자로서는 아쉽게도 함께 하지 못하지만, 최소한 이 분야에서 서로가 무엇을 하는지 아는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서로 연락을 주고 받다가, 우연한 기회에  저희 회사와 잘 맞는 투자사나 협력사를 소개해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직 한국사회는 아직 공과 사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데다, 남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안 좋은 소리를 듣는 것을 싫어하다 보니 솔직한 피드백을 주고 받기보다는 그냥 아무말 안 하고 넘어가 버리고 맙니다. 제가 이사회 멤버로 있는 TeK One에서 개최한 스타트업 행사에서 미국의 벤처 캐피털리스트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끔 스타트업 회사에 투자 검토를 하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은 대부분이 거절이죠…), 한국 사람들은 그 거절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인다. (They sometimes take it personally). 감정적으로 삐쳐서 다시 연락도 안하고 안 좋게 관계가 틀어진다”

미국 회사에서 투자를 받겠다고 하는 분들도 아직 이러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니 한국에서 용감하게 솔직하게 피드백 주고 받으면서 ‘정을 맞고자 하는 모난 돌’은 없겠죠? 제가 참 안 좋아하는 것이 바로 “좋은 게 좋은거지” 라고 생각하면서 잘못된 점들 그냥 덮고 넘어가는 겁니다. 정말 좋은 게 좋은걸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잘못된 것이 보이면 상대방을 위해, 나와 시스템의 Integrity를 위해서 솔직하게 피드백을 해주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우리 이전세대가, 대기업들이 이러한 관행을 바꾸기 어렵다면, 우리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만이라도 이거 바꾸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실력으로 공정하게 평가받는 시스템이 정착될 것이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할 수 있어 스타트업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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