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에서 재료공학 (Materials Science Engineering)을 전공한 나는 졸업 후에 구미의 LG Phillips LCD (지금은 LG Display)에서 노트북 컴퓨터 LCD panel 설계 팀의 사원으로 일하다가, 2005년에 미국 샌디에고의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UCSD)의 공대 대학원 박사 과정으로 유학을 왔다.

그 시절 내 계획은 한국 유학생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좋은 연구실에 들어가, 열심히 연구하여, 좋은 논문들을 Impact factor가 두자리수 되는 Top journal들에 많이 게제하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미국이나 한국의 대학에서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고며 평생 연구를 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창업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정말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해 본 적 조차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업이라는 것은 뭔가 특출난 재능이 있는 사람들, 혹은 사업 수완을 타고난 사람들만 하는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하고 내가 취할 선택지는 아니라고 제외시켜 놓았던 것 같다.

교수가 되려고 다니던 직장도 그만 두고 6개월짜리 아들과 아내를 데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온 내가, 창업에 전혀 관심도 없었던 내가, 그럼 어쩌다가 NanoCellect Biomedical 이라는 스타트업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지도 교수님 Prof. Yuhwa Lo 의 실용적 연구 경향

공대 박사과정생들은 연구를 해서 논문을 써야 하기 때문에 본인이 관심있는 토픽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교수들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Research Assistant (연구 조교) 자리가 있는지를 물어보고 나를 지도 학생으로 받아달라고 요청한다. 그 시절 나는 막연히 UCSD가 Bioengineering 대학원 프로그램이 유명하고 훌륭한 교수님들이 많으니 바이오 센서 (Biosensor) 혹은 Biomaterial (생체 재료) 쪽으로 연구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관련 분야의 교수님들에게 계속 이메일을 보냈지만 10여 분의 교수님들로부터 편딩이 없어서, 혹은 관심있는 연구 주제가 바뀌어서 나를 지도할 수 없다는 거절 메일을 줄줄히 받고 좌절하던 중, UCSD ECE (전자과)에서 광학 유체 센싱 분야를 연구하시는 Yuhwa Lo 교수님의 연구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내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이신 Yuhwa Lo 교수님은 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시다.

대만 출신으로 UC Berkeley에서 EECS (Electrical Engineering & Computer Science) 박사학위를 받으신 후, Cornell 대학 교수로 10여년 간 재직하시던 중이었던 1998년 자신의 연구실 대학원생이던 Felix Ejeckam과 함꼐 광통신에 필요한 레이저, LED 부품을 개발하는 Nova Crystals 라는 스타트업을 설립하여 이 회사를  2004년에 Gemfire에 매각하셨다.  2000년에 Cornell 대학을 떠나 UCSD로 자리를 옮기신 후부터는 본격적으로 Biosensor, Medical Device 쪽에 연구를 시작하셨는데, 딱 그 타이밍에 내가 연구실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UCSD에서 시작한 연구 중 액체 렌즈를 이용하여 초소형 카메라를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spin-off  하여 두번째 스타트업인 Rhevision을 2005년에 시작하셨다.  그러니까, 첫 스타트업을 6년만에 매각하고 나서 불과 1년 만에 또다시 새로운 스타트업을 시작하신 셈이다.  이렇게 본인이 직접 스타트업을 설립하여 운영하신 분이시다 보니 학생들에게도 항상 연구의 실용성에 대해 강조하시는 편이셨다.

Lo 교수님 연구실에서 4년 반 정도 박사과정을 하는 동안 수많은 디스커션을 통해 나 역시 지도교수님의 연구 방식과 철학 등에 영향을 매우 많이 받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창업’이 공대 대학원생이 졸업 후에 취할 수 있는 매력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였다.

스타트업을 체험하다: Rhevision

Lo 교수님의 두번째 스타트업 Rhevision은 2006년 EDF Ventures와 미 중앙 정보국 (CIA)의 스타트업 투자 기관인 In-Q-Tel 로부터 4백만불 가량의 지분 투자를 받았다.  (우리가 아는 그 무서운 CIA – Central Intelligence Agency 맞다. CIA에서는 1999년부터 정보통신 분야의 첨단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에 주로 투자하는 In-Q-Tel 이라는 산하 기관을 설립하여 현재까지 운영중이다.)

참고자료: In-Q-Tel: A New Partnership Between the CIA and the Private Sector

그 전까지 스타트업은 본인 혹은 가족, 친지로부터 돈을 빌려 시작하거나 은행 등으로부터 연대보증을 서서 사업자금을 마련하여 시작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내게 Rhevision의 설립과 투자유치과정을 지켜본 것은 참으로 생소한 경험이었다. 미국 친구들이 잘 쓰는 말로 Eye opening experience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새로운 세계를 본 느낌이었다. 마치 심봉사가 눈을 떴을 때의 기분이랄까! 기술력이 있고, 시장성만 바탕이 된다면 미국에서는 내가 돈이 없어도 창업에 도전할 수는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나도 박사과정을 마칠 때 쯤 저런 도전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Rhevision의 비지니스 모델은 소형 액체 렌즈를 셀폰 카메라에 적용하겠다는 것이었는데, 2007년 UCSD 의대의 제안으로 소형 액체렌즈를 의료용 복강경 (laparoscope)에 응용하는 연구를 Rhevision+ UCSD  의대 + UCSD 공대가 함께 시작했다. 마침 그 때 공대 대학원생이었던 나도 운좋게 이 프로젝트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UCSD 기계과, 재료과, 전자과, 컴퓨터 공학과 대학원생들과 UCSD 의대 레지던트가 한 팀이 되어 수행한 이 프로젝트는 초소형 복강경 (SurgiCam = Surgical Camera 이라고 이름 붙였었다)을 개발하는 것으로써, 2010년 졸업할 때까지 나의 박사과정 연구 사이드 프로젝트였다. 내가 Rhevision을 창업한 것도 아니고 거기서 월급이나 스톡옵션을 받은 직원도 아니었지만, Rhevision과 UCSD의  SurgiCam 개발 프로젝트의 일원으로서 3년간 정말 돈으로도 살 수 없고 어디에서도 배우지 못할 값진 경험을 얻게되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는 점점 공학기술을 의료, 생명과학 분야에 적용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시간과 예산의 낭비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빠른 템포로 돌아가는 스타트업의 일상이 어쩌면 내게 잘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될 만큼 변해가고 있었다.

뜻밖의 스타트업 경험.png
박사과정 연구 중 사이드로 진행했던 SurgiCam 프로젝트. CIA 산하 In-Q-Tel과 미국 국토부 (Homeland Security)로부터 연구 개발 자금을 지원 받았으며, UCSD 외과의 의사들과 협업하는 값진 경험을 했다. (오른쪽에서 두번째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쪼박)

실패도 자산이 되는 미국 스타트업 문화

일반적으로 스타트업의 90% 혹은 99%는 실패한다고 한다. Rhevision도 제품 개발 및 판매까지는 성공하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문을 닫고 말았다. 한마디로 지도 교수님이 창업하셨고 내가 대학원생으로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던 스타트업이 ‘망한’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서 눈앞이 깜깜했다.  VC는 물론이고 CIA와 Homeland Security에서 수 십 억원의 돈을 지원받았는데  이렇게 실패해 버려서 그들은 투자 원금도 회수하지 못했으니 당연히 교수님이 어떤 형식으로든 처벌(?) 혹은 불이익을 받게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우리로 치자면 국정원에서 수 십 억원을 받아 사업을 하다가 쫄딱 망해서 그 돈을 다 날린 판인 셈이었으니 그렇게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교수님이 잘못되시면 나는 또 어떻게 해야하나? 박사과정 디펜스까지 1년도 안 남았는데 이제 와서 지도교수님 새로 찾고 논문 주제 다시 시작해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함 때문에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교수님과 우연히 점심 식사를 하게 되어서 그 자리에서교수님께 여쭤보았다. 교수님 어떻게 되시는 거냐고.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환, Rhevision이 결국 실패한 것은 맞아. 그 많은 투자금을 다 쓰고도 결국엔 우리가 개발하고자 했던 제품을 원하던 수준으로 만들어 내놓지 못했으니 안타깝고 지금도 속은 쓰리지. 하지만 우리가 Rhevision을 운영하면서 (엔론 과 같은) 회계 부정과 같은 범죄를 저지르거나 일부러 태업을 해서 이렇게 망한 건 아니잖아?  우린 지난 5-6년 간 정말 열심히 개발에 임했었고 매순간 최선을 다했지만, 그것이 꼭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

네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교수가 되거나, 회사를 가거나, 무엇을 하게 되더라도, 이 점은 항상 명심했으면 좋겠다. 열심히 한다고 해서 사람이 항상 성공할 수는 없는데, ‘실패에서 무엇을 배우느냐, 그리고 그 실패를 얼마나 빨리 딛고 일어서느냐’가 네 커리어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거야.  그리고 이 곳 미국, 특히 실리콘 밸리를 비롯한 미 서부 지역은 스타트업의 실패에 대해 대체적으로 너그러운 편이니 한 번 실패했다고 위축되고 주저 앉아 있을 필요 없어. 빨리 추스리고 다음을 기약해야지.”

이 말씀을 통해 ‘처자식도 있는데, 박사학위 끝나고 창업했다가 망하면 패가망신 하는 것 아니야?’ 라는 막연한 걱정도 결국 나의 쓸데없는 기우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박사 학위 취득 후 언젠가 창업하는 것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고려하게 되었다.

샌디에고의 활발한 기술기반 창업 생태계

연쇄 창업자셨던 지도교수님, 그리고 Rhevision과 협업을 통해 얻은 스타트업 간접 경험이 박사학위를 받은 2010년에 NanoCellect를 창업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다. 더불어 이 외에도 샌디에고의 활발한 기술 기반 스타트업 창업 생태계도 내가 창업을 하게 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아래 도표에서 보듯이 샌디에고에서 1년에 평균적으로 440여개의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 설립되고 있다. 매일 1.2개의 새 스타트업이 생기는 셈이다. 특히 생명공학, 바이오테크 스타트업은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많이 생기는 곳 중에 하나이다보니 (LA나 San Francisco 보다도 더 많이 생긴다!) 스타트업 인프라, 소위 생태계가 잘 갖추어져 있어서 이 곳에서 본인이 의지만 확고하다면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것은 어렵지 않고, 특히 대학에서 spin-off 를 통해 창업하는 것은 정말 흔하게 볼 수 있다. 대학에서도 이렇게 하기를 적극 장려하며 직간접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샌디에고 창업 생태계

스타트업 관련 정보를 전달해주는 관련 행사나 네트워킹 행사에 참여하여, 먼저 창업하여 성공한 선배들로부터 그들의 경험담을 듣다보면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특히, 얼마 전까지 수업을 같이 들었던 친구나 연구실 복도에서 자주 마주치던 동료가 스타트업을 시작하고 시드 펀딩, 시리즈 A 펀딩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스타트업 창업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내 주변에서도 빈번히 일어나며 나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도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 이것이 스타트업 생태계가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아닐까.

발명. 그리고 NanoCellect의 창업.

박사과정 중에 우연히 발명을 하게 되어 우선 UCSD 의 특허 및 지적재산권 업무를 담당하는 Tech Transfer Office (TTO)에 disclose를 했다. 이것은 ‘UCSD에서 연구하면서 이런 발명을 했다’ 라고 보고하는 절차로, 이 절차를 거치면 UCSD TTO는 특허를 출원하고 그 특허의 소유권은 UCSD에 귀속이 된다. 그로부터 몇 달 후 UCSD TTO 에서 우리 기술에 관심을 가진 몇몇 기업들이 licensing을 하고자 문의를 해왔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마침 교수님과 나는 이 기술을 가지고 새로운 스타트업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며 약간 망설이고 있던 중이었는데, TTO로부터 그 소식을 듣자 자신감이 생겼다. 우리가 개발하고자 하는 제품이 최소한 ‘시장에서 원하지 않는 제품은 아니구나’ 에서 사실에서 온 안도감.  바로 스타트업을 시작하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이다.

요약하자면, 연쇄 창업자셨던 지도교수님의 영향 (혹은 뽐뿌?) + 스타트업 생활 간접 경험 + 샌디에고의 스타트업 생태계, 이 세 가지 요소들이 적절하게 박사과정 5년간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고, 그 덕에 2010년 기회가 왔을 때 스타트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아, 말 그대로 어쩌다 창업을 하게 된 셈이다.

  • 샌디에고 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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