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SBIR 프로그램과 먹튀 우려에 대한 짧은 생각‘ 포스팅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다.

더불어 좋은 아이디어와, 최선을 다해 창업에 매달릴 솔직하고 열정적인 창업가를 평가하고 선별하는 절차를 공정하게 만드는 것은 해당 정부부처가 책임지고 해야 할 일이다.

오늘은 지난 포스팅의 연장으로, SBIR 프로그램의 ‘공정성’을 다루어 보려고 한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내 블로그에서 이전에 다루었었다.

SBIR 과제 선정 절차 – 투명성이 관건입니다

SBIR 과제 심사 후 피드백 (Feedback)의 중요성

저 두 글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첫째로 과제 선정 과정 전체를 최대한 투명하게 만들어서 대중에게 공개한다면 ‘심사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둘째는 심사 후에는 심사위원들의 피드백을 지원자에게 (선정이 되었건, 탈락이 되었건) 가감없이 전달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SBIR review 과정에 대한 투명성을 확보하고, 오랜 시간 동안 신뢰를 누적함으로써 하나의 ‘제대로 된’ 시스템으로 자리잡게 된다면 SBIR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트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들 모두에게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게 될 것이다.  반대로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잡음이 생긴다면? 프로그램의 본래 취지는 이내 사라지게 될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들, 정확히 말하면 납세자들이 간접적으로 받게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혈세가 낭비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어디까지 투명하게 밝혀야 하는 것일까?

일단 과제 공모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https://report.nih.gov/

위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미 국립보건원 (NIH)에서 수여한 R&D Grant 및 SBIR 수여자, 회사들에 대한 통계를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재미있는 사실은 2016년에 NIH에서 총 1,847개의 SBIR award를 수여했는데 (Phase I, Phase II, Bridge 모두 포함), 그 중에 67%에 해당하는 1,244개가 Omnibus, 즉 Investigator initiated (연구자가 제안하는 과제)였다.  단 33%만이 NIH에서 특정 주제를 정하여 공모한 과제인 것이다.  연구자가 제안하는 과제가 아닌 특정 RFP를 통해 과제를 공모하는 경우, 몇 개월 전부터 누구나 웹사이트에서 공고를 확인할 수 있으며, 정해진 데드라인까지 연구계획서를 제출하면 된다. 연구자가 제안하는 과제의 비율이 약 3분의 2정도 되는데, 일단은 NIH가 주도를 하기보다는 직접 현장에서 기술 상용화를 위해 노력하는 회사들이 회사 운영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부분에 예산을 쓰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경우 NIH 주도가 아니므로, 소위 연구 자금을 놓고 ‘짜고 치는’ 행위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정해진 데드라인까지 제안서를 접수하고 나면, 언제 당신의 과제가 심사될 것을 이메일로 통보받는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가 2017년 1월 5일에 제출한 SBIR 과제가 내일 3월 21일에 심사 받을 것이라는 이메일을 2월 초에 받았다. (실은 이것 때문에 맘이 불안해서 이 야밤에 퇴근도 미루고 이 글을 쓰고 있다 ㅜㅜ)

2월 중순경에 NIH website에는 우리 과제를 심사할 심사위원들의 이름, 소속, 직위가 낱낱이 공개된다.  그 중엔 교수들도 있고, 다양한 회사나 연구소의 연구소장, CEO, CTO들도 섞여 있다. 그걸 보고 내 제안서를 심사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되면, 예를 들어 경쟁사의 임원이 심사위원으로 들어가 있거나 심사위원들의 background가 나의 기술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되면 이의를 제기할 수가 있다. 심사가 끝난 후엔 이의를 제기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심사가 끝나면 심사위원들의 피드백이 고스란히 연구자에게 전달된다. 전에도 썼지만, 6-12쪽 짜리 연구 제안서에 8-10쪽 짜리 심사 보고서가 돌아온다. 거기엔 심사위원 1, 2, 3이 우리 제안서를 평가한 내용들이 고스란히 적혀있다.

단, 보고서 상의 심사위원들의 이름은 익명으로 처리된다. 그래야 솔직한 평가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높은 점수를 준 심사위원과 가장 낮은 점수를 제외하지 않고 포함시킨다. 어떤 프로젝트를 심사할 때, 남들보다 현저하게 높거나, 낮은 점수를 주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이 분야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저히 높거나 낮은 리뷰 점수를 준 심사위원은 자기가 왜 이런 점수를 주었는지 타당한 근거를 들어 다른 심사위원들을 설득하여야 하며, 이 모든 과정은 NIH의 Program Officer가 모니터링하여 보고서에 포함시킨다.

어떤 회사가, 어떤 프로젝트로, SBIR award를 ‘얼마’ 받았는지도 공개된다

여기에 더해 NIH는 SBIR을 받은 회사들의 정보를 홈페이지에 전부 공개한다. 이 회사가 언제, 얼마를 SBIR로 받았는지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며, 제안서의 Abstract 부분도 공개된다.  아래를 보면, 우리 회사가 2013년부터 2016년 사이 받은 SBIR award에 대한 내용이 공개되어 있다.  2013-2016 기간동안 SBIR Phase I을 3개 받았고, SBIR Phase II를 2개 받았으며,  총 $3.98 million (한화 약 45억원 가량)을 NIH로부터 받았다. 회사 홈페이지 및 주소, 직원 수 (15명)까지 개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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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IR.GOV에 공개된 우리 회사가 받은 SBIR award 내역

아쉽게도 우리회사 NanoCellect는 모르는 사람이 많으므로, 유전자 검사로 유명한 유니콘 스타트업인 23andMe를 여기에서 검색해 보았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23andMe 역시 HHS로부터 총 7개의 SBIR Phase I, II Award를 받았다. 금액은 약 $4.14 million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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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간 23andMe는 236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었고, 창업자가 여성이므로 Ownership Information 란에 ‘Woman Owned에 Yes‘라고 표시되어 있다. 여기에서 더 스크롤을 내리면 23andMe가 받은 Award list가 주욱 나열되어 있으며 제목을 클릭하면, 연구 책임자 PI의 이메일과 23andMe가 제출했던 제안서의 Abstract까지 다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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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IR 과제 공고부터 심사위원 선정, 심사 보고서는 물론이거니와, ‘어떤 회사가’ ‘어떤 프로젝트로’ 얼마의 SBIR Award를 받았는지가 다 공개된다. 읽어보고 이의가 있으면 이메일로 문의하면 된다. 내가 위에 예로 든 정보들은 그냥 Googling을 해도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들이다. 이 정도로 투명하게 다 공개가 되니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짜고 친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을 것이고, SBIR에 지원하는 연구자들이나 회사들은 심사과정에서 ‘최소한의 공정성’에 대해 신뢰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국 정부 과제에 지원했던 경험

이와는 좀 반대되는 경험을 몇 년 전에 했었다.

미국 대학 연구실과 우리 회사 그리고 한국 연구자분들이 팀을 이루어 한국 과제에 신청했던 적이 있는데, 수행 과제 주제는 이미 정해져 있었고, 과제 제출 마감일이 3주 정도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과제가 공고된 것으로 기억한다. 내게 정말 이상했던 것은 내 제안서의 심사 결과가 언제쯤 나오는지는 알겠는데, 누가 심사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받지 못했다. 더 이해가 안 되었던건 이른바 ‘암맹 평가‘라 하여 소위 짬짜미 부정을 막기 위해 제안서에 연구 담당자를 알 수 있는 어떠한 정보도 넣어서는 안된다는 점이었다.  이름과 소속은 물론이거니와 회사명도 못 넣게 되었고, 심지어는 간접적으로라도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상대가 충분히 유추 가능한) 논문 퍼블리케이션 혹은 출원한 특허에 대한 정보도 제안서에 넣을 수 없게 되어있다.   (미래부의 기초연구 사업 암맹 평가 안내 자료)

과제를 제출한 후에 잊고 있다가 평가일이 다가오니 결과가 궁금해진다. 잘 되었을까?  결과가 나오면 한국에서 알려주시겠지 싶어 따로 이메일을 보내지 않고 기다렸다. 결과는 ‘탈락’. 뭐 아쉽지만 경쟁이 심할테니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SBIR도 Phase I은 10에 9은 탈락 통보를 받으니 탈락 통보는 이미 익숙한 경험이다. 헌데, 탈락을 통보하는 방식이 사뭇 아쉽다. 평가 후에 그에 대한 ‘피드백’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담당자에게 ‘탈락되어 좀 아쉽네요. 왜 탈락했는지 아시는지요? 피드백은 없었습니까?’ 라고 여쭈어보니 ‘I am very sorry to tell you that it did not make it.‘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가 탈락했으면, 어느 그룹이 받았을까? 그 그룹은 어떤 프로젝트로 과제를 받은 것인가? 이 질문들은 던져보지도 못하게 되었다.

  • 샌디에고 쪼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