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혹은 오프라인 상으로 미국 정부의 SBIR 프로그램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실은 2015년 여름에 이 쪼박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도 비슷한 질문들에 이메일로 답변을 드리다가 궁금해하시는 부분에 대한 내 답을 모아서 공개하는게 좋겠다 싶어서였다.
이에 블로그에 올린 글들 중 SBIR 프로그램을 이해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내용들을 따로 정리해 보았다. 이 글타래는 다음과 같다.
미 정부의 SBIR (Small Business Innovation Research) 프로그램
미 정부의 SBIR 프로그램 – Phase II Bridge 펀딩
저 글들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요약하자면,
SBIR (Small Business Innovation Research)은 혁신적인 (Innovative) 기술을 가진, 500명 이하가 근무하는 중소기업 (Small Business)들에게 (대부분의 경우 Startup 회사들이 수혜자) 미국 정부에서 재정 지원을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IPO까지 갔더라도 직원 수가 500명 미만이라면 SBIR에 지원할 수 있다. 미국 연방 정부 기관 (Federal Agency) 중 연간 R&D 예산이 $100 million (1 억 달러, 약 1 천 1백억원, ($1=1100 원)) 이상인 정부 기관들은 그 중 약 2.8% (2015년 회계년도 기준)에 해당하는 만큼의 예산을 SBIR로 집행해야 하며, 이 정부 기관들은 국립 보건원, 국토부, 국방부 등 약 11개 정부 부처가 해당된다. 2013년 기준, 정부 기관에서 집행한 총 SBIR 예산은 약 $2.1B 에 달한다 (한화 약 2조 3천억원 정도).
우리 회사 NanoCellect는 주로 미국립 보건원 NIH (National Institute of Health)의 SBIR 프로그램에 지원하였는데, NIH의 경우 Phase I을 통과하면 (약 13% 정도의 회사가 선정됨) 6개월에 15만불 혹은 9개월에 20만불을 지원받게 된다. 여기서 Phase II까지 통과하게 되면 (Phase I을 마친 회사들이 지원하는데 선정률은 약 30-35% 정도 된다. 즉, 셋 중 하나가 지원받는 셈이다) 2년에 1백만불~1백 50만불까지 지원해준다. 따라서, Phase I, II 다 받게되면 최대 1백 70만불, 약 20억원 정도를 지원받게되는 셈이다. 20억이면 왠만한 스타트업 시리즈 A에 달하는 금액인데, 이 금액을 정부에서 지원해주면서 지분도 요구하지 않고, 회사가 나중에 성공했다하여 그 금액의 일부를 정부에 도로 갚을 필요도 없다. 지원받은 돈으로 연구/개발하는 과정에서 얻게되는 지적재산권도 스타트업이 소유한다. 말 그대로 No strings attached인 것이다.
이 부분에서 많은 분들이 의아해 하신다. (적어도 내가 이 프로그램에 대해서 설명해드린 한국분들은 거의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이셨다.) “수십억이 넘는 돈을 스타트업에 지원해주는 취지는 좋은데, 결국 그게 다 국민들 세금아니냐, 그런데 아무런 보호장치(?)도 없이 그냥 줘버리면 어떻게 하느냐. 나중에 회사가 크게 성공했을 때 금액 중 일부를 돌려받거나, 아니면 지분 (equity)라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 모럴 해저드의 위험성이 있어보인다” 등등.
위에 말했듯이, SBIR은 Loan이 아니다. 연구의 상용화 개발 지원을 위한 Grant이기 때문에 지원 받은 회사가 성공을 하던 실패를 하던 어떤 형식으로든 채무가 발생하지 않는다. 미국 정부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학 및 연구소의 우수한 R&D 결과물들이 논문에서 머물지 않고 실제 사업화 단계에까지 진행될 수 있도록 장려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얻은 결과물을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창업한 회사들의 예는 수도 없이 많다. (SBIR Success Stories)
미국에서도 Private sector에 세금을 들여 지원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처음 1970년대에 SBIR을 법제화하는 과정에서 치열한 논의가 있었다. SBIR 프로그램이 Pilot 프로그램에서 실제 1982년 법제화되어 로날드 레이건 대통령이 SBIR 법안에 서명하기 까지 무려 7년 이상이 걸린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7년 간의 논쟁 끝에 구성원 간 합의를 도출해 냈고, 매 5년마다 미국 의회에서 재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큰 맥락은 훼손하지 않고 프로그램 진행 상에서 발견된 문제점들을 조금씩 개선해 가면서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어려운 목표에 도전 했다가 실패하는 것은 비난 받을 일이 아니다- ‘실패’에 대한 사회적 관용
내가 창업을 해서 SBIR에 지원했는데 운 좋게 Phase I, II를 받게 된다면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다. 허나, 제아무리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최선을 다해서 일한다해도 스타트업은 90%이상이 실패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대부분은 실패한다. 하지만, SBIR 펀딩을 많이 받고나서도 실패했다고 해서 세금을 낭비하였다고 벌금을 물리거나, 실패를 딛고 재창업을 한 후 SBIR 프로그램을 지원하는데 불이익을 주는 사례는 전혀 없다. 물론 이전에 실패했다는 사실은 본인의 개인 히스토리 상에서 갖고 가야할 reputation이지만, 이전에 실패했던 것을 들어 SBIR 지원자격에 제한을 두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실패한 창업가에게 금전적, 법적 책임을 지우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Tesla의 창업자 Elon Musk는
‘실패는 하나의 선택이다. 즉, 당신이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은, 혁신적인 것을 시도해 본 적이 없다는 말과 같다’
“Failure is an option here. If things are not failing, you are not innovating enough.”
라고 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이것이 우리가 그렇게 따라하고 싶어하는 실리콘 밸리를 떠받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철학이 아닐까.
이렇게 한 번 생각해보자. 어떤 과제의 목표 달성률이 50%를 넘어 100%에 육박한다는 것은 (1) 과제 책임자가 데이터를 조작해서 그럴 듯하게 보고서를 썼거나, (2) 애초에 ‘Innovative’하지 않은 아주 쉬운 목표를 설정했다는 말이다. 즉 거짓말을 했거나, Elon Musk의 말처럼 Innovative한 시도를 하지 않았으니 실패할 가능성이 애초에 거의 없었던 것이다. SBIR은 말 그대로 Innovative한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보유한 스타트업을 주로 지원하므로 당연히 High risk taking을 할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지원 프로그램이 ‘실패’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나는 최선을 다했으나 실패한 경우를 두고 정부지원금을 받았다 하여 ‘모럴해저드, 먹튀’라고 부르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과제 선정 혹은 연구비 관련 부정 행위는 엄벌해야 한다.
단, SBIR을 받는 과정에서 지원서에 거짓이 포함되었거나, 본인의 과제 참여율을 의도적으로 누락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과제 지원금을 유용하는 경우에는 법적인 처벌을 받게된다. 형사 처벌은 물론이고 나중에 SBIR 주관 부서로부터 부정적으로 사용한 금액의 몇배에 달하는 액수를 물어내야 한다. 이건 당연히 모럴 해저드를 넘어 엄연한 범죄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2016년에 미국 UCSD의 한 연구 교수가 자신이 창업한 회사인 SciberQuest를 통해 미항공우주국 (NASA), 미과학재단 (NSF)의 SBIR 펀딩을 받았는데, 자신이 UCSD에 full time으로 재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감추고, 그 당시 함께 진행 중이던 정부 과제목록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는 방식으로 8년여간 1백 90만불의 돈을 자신의 월급으로 부정하게 사용한 것이 적발되었다. (As a result, from 2005 to 2013, Dr. Karimabadi received over $1.9 million in salary from SciberQuest due, in part, to the fraudulently obtained grants or contracts). 아래 링크된 미국 법무부 (Department of Justice) 웹사이트에 이 케이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다.
Former UCSD Professor Admits Fraud, Agrees to Forfeit $180,000
맨 아래 나와있는 Summary of Charge를 보자. 이런 행위는 중범죄 (felony)로 분류되어 최대 25만불의 벌금 (혹은 범죄에서 파생 된 총 이익 또는 손실의 두 배)과 함께 최대 20년까지 구금될 수 있다고 나와있다. 이 정도 형량이라면 딴 생각을 품는 사람의 숫자가 줄어들지 않을까? 물론, 비싼 변호사 고용해서 구속은 면하고 어찌어찌 작게 막더라도 (위의 교수 역시 유죄 인정하고 18만불 (2억원) 몰수당하게 되었다.), 당연히 회사는 문 닫아야 하고 ‘부정한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므로 다시는 그 분야에 발붙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커리어가 말 그대로 끝나는 것이다. 저 교수도 당연히 UCSD에서 바로 해고되었다.
SUMMARY OF CHARGE
Wire fraud, a felony, in violation of Title 18, United States Code, Section 1343.
SciberQuest’s Maximum Penalty: 5 years of probation, and a minimum of 1 year of probation; a fine of $500,000, or twice the gross gain or loss derived from the offense; a mandatory special assessment of $400 per count; an order of restitution; and an order of forfeiture.
Karimabadi’s Maximum Penalty: 20 years in custody; a fine of $250,000, or twice the gross gain or loss derived from the offense; a mandatory special assessment of $100 per count; an order of restitution; and an order of forfeiture.
실패는 용인하되 부정은 엄벌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려운 목표에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것은 용인해주고 가능하다면 재도전의 기회도 주어야 한다. 실패를 통해 더 높이 도약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래야 R&D 기반의 창업이 활성화될 수 있고, 이게 계속 축적되면 성공적인 스타트업들이 한국에서 생겨날 가능성도 덩달아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연구비 유용이라던가 거짓 보고등은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처벌하여, 적발될 경우 다시는 해당 분야에서 재기가 불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 두가지가 만약 반대로 되어버린다면 (예를 들어 연구비 유용 사례를 적발하고도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고 덮어버린다면), 스타트업이건 뭐건 제대로 될 리가 없지 않은가.
(더불어 좋은 아이디어와 최선을 다해 창업에 매달릴 솔직하고 열정적인 창업가를 평가하고 선별하는 절차를 공정하게 만드는 것은 해당 정부부처가 책임지고 해야 할 일이다. 이 부분은 따로 글을 쓰도록 하겠다.)
-샌디에고 쪼박
잘 읽고 갑니다
최충엽씨 소개로 왔습니다
종종 만나길 바랍니다
서울에서 이상기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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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블로그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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