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저희 회사가 시리즈 A를 받았다는 좋은 소식을 올렸는데요, 시리즈 A를 클로징한 지 2주도 채 되지 않아 나쁜 소식을 받았습니다.

토론에 상정되지도 못한 SBIR 제안서

지난 9월 초에 미국립 보건원 NIH에 SBIR 지원서를 하나 제출했습니다. 연구개발용 기기인 WOLF 세포 분리기와는 달리, Microfluidics와 간단한 광학원리를 이용하여 질병 진단 기기를 개발하는 신사업 건이었습니다.  2015년 초에 아이디어가 나와서 실험을 해봤는데 결과가 생각보다 잘 나와서 사업화를 해 보려고 한 번 시도해 보았습니다.

보통 9월 초에 SBIR 제안서를 제출하면, 11월 중순 경에 워싱턴 DC에 있는 NIH에서 20-30여명의 심사위원 (reviewer)들이 모여 함께 심사합니다. 10월 초 쯤에 NIH SBIR 웹사이트를 통해 저희 제안서가 11월 16일에 심사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저희 제안서를 심사할 심사위원의 이름과 회사, 직위정보가 담긴 Meeting Roster도 함께 받았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 분야의 연구를 하는 대학 교수들과 관련 분야 회사들의 CTO, CSO, Principal Scientist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10월 말에 시리즈 A 클로징하고 11월 초부터 엔지니어들을 추가로 채용해서 막 피치를 올리던 터라 SBIR 제안서가 좋은 리뷰를 받아 내년 초부터 이 쪽 프로젝트도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1월 19일경 NIH SBIR 웹사이트에는 review score 대신 ‘Not Discussed’라는 메세지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SBIR은 심사 후 각 제안서에 10점-90점의 점수 (review score)를 매겨 점수가 낮은 순대로 펀딩을 줍니다. 10점이 최고 점수이고 90점이 최하 점수입니다. NIH의 sub agency (NCI, NIGMS, NIBIB 등등)의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25점 이하면 거의 100%, 25-30점 사이면 70-80%는 펀딩이 된다고 보면 됩니다. 저희 회사에서 낸 제안서의 점수가 가장 좋았던 경우가 16점입니다. 간혹 30점대 초반도 펀딩이 되는 경우가 있긴 한데 마침 펀딩 사정이 특별히 좋았다거나 다른 제안서들도 점수를 잘 받지 못해 순서가 돌아온 특별한 케이스 입니다.

그런데 최하점인 90점을 받는 것보다 더 안 좋은 것이 바로 Not Discussed입니다. 하루에 모여서 심사를 하니 제출된 모든 제안서를 모두 다 토론에 부치지 않습니다. 보통 반 정도 미리 읽어보고 어떤 것들은 토론하여 점수를 매기고 어떤 것들은 토론에 넘기지 않는 것이지요. 마치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한 안건’과 같은 것이라 보면 됩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시리즈 A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런 소식이 들어오더군요. 마침 그 때가 미국 추수감사절 무렵이라 연휴 분위기 흐릴까봐 회사에는 알리지 않고 점심 회식을 중식당에서 했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점심 식사를 마치고 포춘쿠키를 뜯으니 아래와 같은 문구가 있더군요. “Things are not always what they seem. It’s not that bad (상황이 보이는 것처럼 나쁜 것만은 아닐거야)” 진짜 제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그래서 고이 모시고 와서 제 책상 모서리에 붙여 놓았습니다.

TwoMessages

심사 보고서를 읽다

그로부터 약 2주 후 NIH에서 저희가 보낸 제안서의 심사 보고서 (Review Summary Statement)가 준비되었다는 이메일이 왔습니다. 심사위원 토론에 부쳐졌든 아니든 제출한 제안서를 심사했으니 심사위원 3명의 의견이 담긴 보고서는 무조건 보내줍니다. 왜 토론에 부쳐지지도 못한 것인지는 알려 주어야 하니까요. 이전의 제 글 “SBIR 과제 심사 후 피드백 (Feedback)의 중요성” 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이렇게 하는 것이 첫번째는 제안서를 제출한 회사, 연구자에 대한 예의이고, 두번째 시스템을 투명하게 운영하는 대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제출한 제안서의 연구 계획서 (Research Plan+Business Plan)가 총 22페이지였는데요, 심사위원들이 돌려보낸 제안서가 총 13페이지 입니다. 마지막 3 페이지는 Meeting Roster 명단이니 실제 심사위원들의 리뷰는 10페이지정도 되는 것이지요. 즉 22페이지 연구 계획서를 제출하면 최소한 10-15페이지에 달하는 심사 보고서가 돌아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 긴 심사 보고서를 차근차근 읽는 데도 꽤 시간이 걸립니다. 점수를 잘 받은 보고서는 읽으면서 기분이 좋은데, 이번 것 처럼 Not Discussed나 점수가 안 좋은 심사 보고서는 읽기가 참 힘듭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유명인들이 자신의 기사에 달린 악플을 하나 하나 꼼꼼히 읽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심사위원들도 사람인데다 제안서를 읽는데 충분히 시간이 주어지지 않다보니 가끔은 심사위원이 저희 제안서의 내용을 잘못 이해한 점들도 보이고, 이 사람이 약간 Biased되었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때도 종종 있거든요. 당장 따지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죠. 이런 부분들이 발견될 때에는 저희가 프로젝트 담당 Program Officer에게 전화 및 이메일을 통해서 정식으로 항의할 수 있고 토론을 통해서 실제로 정정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희도 두어개 정도의 제안서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펀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거절된 저희 심사보고서를 찬찬히 읽어보니 Significance, Investigator(s), Innovation, Approach, Environment 이 다섯가지 심사 항목 중 Significance 항목에서 안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는 연구자들의 능력도 괜찮고 (Investigator), 기술도 혁신적이고 이론적으로 가능해보이며 (Innovation, Approach), 이 연구를 수행할 만한 환경도 훌륭한데 (Environment), 이 프로젝트에서 만들고자 하는 ‘제품/서비스’가 고객에게 얼마나 큰 도움을 줄 지는 명확하지(Significant) 않다는 말입니다. 즉, 당신들이 정해놓은 프로젝트의 목표를 향해 빨리 추진할 수 있다고 해도, 당신들이 잡은 방향이 잘못되었으니 다시 생각해보라는 것이지요.

대부분은 저희가 세운 가설들 (우리 제품은 이러이러한 환자들에게 필요할 것이다 등등)에 의문을 표한 것들이었습니다.  보고서 중간중간에 저희가 세워놓은 수학공식을 잘못 이해한 듯한  모습들도 보였는데, 그건 지엽적인 문제들이었고, 프로젝트의 대방향을 재검토하라는 메세지가 바로 핵심이었습니다. 보고서를 다 읽고나서 새벽에 잠들었는데, 회사가 망해서 홈리스가 되는 악몽을 밤새도록 꾸다가 새벽에 깼네요 ㅎㅎ  벤처캐피털이나 엔젤 투자자들과의 미팅후에도 거절될 때 이런 저런 거절 이유를 듣곤 하는데요, 투자자들은 그래도 nice하게 거절하는데 반해 SBIR review는 과학, 기술쪽의 맹점에 대해 가감없이 평가를 하고 Meeting Roster는 공개되지만 그 중에 누가 나의 제안서를 리뷰했는지는 비밀에 부쳐지니 (개인 신상은 절대로 안 알려줍니다) 더욱 신랄하게 비판을 받게 되어서 가끔 정신적인 데미지를 입기도 합니다. 🙂

그런데 곰곰히 시간을 두고 다시 생각해보니, 이것이 오히려 더 잘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두명도 아니고 심사위원들 모두가 Significance에 의문을 표시할 정도라면 이 프로젝트의 방향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다시 한 번 검토해야할 것입니다. 그것이 외부의 리뷰를 받는 목적 중 하나니까요.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 모든 이가 동의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중요한 포인트를 내부인들이 놓치고 있을 가능성이 크거든요. 어쩌면 저희 프로젝트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심사위원들이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결국은 저희의 실수입니다. 저희가 환자들을 위해 개발하려는 제품이 어떤 것인지를 제안서를 통해서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회사에서 팀원들과는 크게 신경쓰지 말고 심사위원들 조언대로 프로젝트 방향을 재설정해보기로 협의했습니다. 그래서 2016년 4월에 다시 한 번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프로젝트를 재설정하는데 있어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다면 여기서 중단하면 됩니다. 최소한 성공하지 못할 프로젝트에 인력과 자금을 쏟아 붇는 불상사는 안 생기겠지요.

Things are not always what they seem. It’s not that bad!

Soon you will receive pleasant news!

2015년에는 좋은 일도 많고 나쁜 일도 많았는데요, 위의 두 메세지를 보며 앞으로도 힘내려 합니다.

여러분들도 2016년에는 즐거운 뉴스를 받게 되시길 기원합니다.

샌디에고 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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