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샌디에고는 실리콘 밸리만큼은 아니지만, 스타트업 생태계가 짜임새 있게 잘 조성이 되어 있다. 스타트업의 숫자나 투자 규모만 보더라도 미국에서 실리콘 밸리, 보스턴, 뉴욕, LA+Orange County에 이어 다섯번째로 큰 규모이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잘 조성된 도시들을 살펴보면 유명한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나 인큐베이터들이 하나씩 꼭 있다. 대표적으로 실리콘 밸리에는 폴 그레이엄과 샘 알트만이 세운,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Y-combinator가 있고, 보스턴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인큐베이터’라 자랑하는 Mass Challenge가 있다.  Y-combinator나 Mass Challenge만큼 전국적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샌디에고에도 스타트업 인큐베이터가 더러 있는데 오늘은 그 중 하나인 EvoNexus를 소개할까 한다.  (내 블로그에서 이전에 잠깐 언급했던 비영리 기관인 CONNECT는 1985년에 세워진, 어쩌면 가장 오래된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이긴 한데 스타트업을 입주시켜 멘토링하고 투자까지 직접적으로 연결시켜 주지는 않아 인큐베이터라고 하긴 힘들다.)

비영리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EvoNexus 설립 배경

EvoNexus는 2008년 터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미국이 불황을 겪고 있던 2009년, Peregrine Semiconductor의 창업자이자 CFO인 Rory Moore가 샌디에고의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Local 스타트업이 많이 나와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이를 도울 수 있는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Statup incubator)가 있어야 한다고 주변의 지인들을 설득하여 시작된 ‘민간 주도의 비영리‘ 인큐베이터이다.

많은 미국의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나 인큐베이터는 ‘민간주도’로 운영되니 이건 특별할 것이 없다. ‘비영리’라는 말에서 보이듯이, 다른 인큐베이터와의 가장 큰 차별점은 미국 국세청 (IRS)에 공식으로 등록된 비영리 단체 (Non Profit Organization)이라는 점이다. EvoNexus는 입주한 스타트업에 투자하거나 in-kind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스타트업의 지분을 가져가지 않는다. (Y combinator는 입주 스타트업에 $120,000 를 투자하고 7%의 지분을 가져가며, 다른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들도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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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oNexus의 Founder이자 CEO인 Rory Moore

인큐베이터를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은 샌디에고 지역 기업들로부터 기부를 받거나, 전략적 파트너쉽을 통해 마련한다. EvoNexus의 홈페이지를 보면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Irvine Company, Qualcomm, InterDigital, ViaSat, Cisco 이렇게 5개 회사가 EvoNexus의 ‘Strategic Funding Partner (전략적 펀딩 파트너)‘로 나와있다. 전략적 파트너들은 일정 금액을 (50만-1백만 달러로 추정) 기부 형태로 도네이션 하는 대가로, EvoNexus 인큐베이터에 입주할 스타트업을 고르는 심사 과정에서부터 참여할 수 있고, 자사의 비즈니스 모델과 부합하거나 성장 가능성이 큰 스타트업들의 멘토가 될 수도 있으며, 그 회사가 잘 될 경우 우선적으로 투자하고 M&A까지 할 수 있는 권리, 혜택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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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oNexus의 ‘Strategic Funding Partner’ 5개사

위의 Strategic Funding Partner 사들 외에도 샌디에고 지역의 많은 크고 작은 회사들이 EvoNexus의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다. 연 후원 금액에 따라서 등급이 나뉘는데, 스타트업의 멘토로 참여할 수 있는 Mentor Sponsor의 연회비는 $25,000이다. 그 아래로 Platinum은 $10,000, Silver는 $5,000, Spectrum sponsor는 $2,500의 연회비를 납부하고 등급에 맞게 제공되는 네트워킹 행사나 비공개 행사등에 초대되어 입주 스타트업과 비즈니스를 모색한다.

Link – EvoNexus의 Sponsors (스크롤을 내리다보면 익숙한 회사들이 많이 나오는데 한국의 SK Telecom Americas이나 LG 전자도 보인다. Qualcomm이나 Sony같은 테크 기업은 물론이고 로펌, CPA 회사들도 리스트에서 찾을 수 있다. 로펌이나 CPA 회사들은 스타트업 회사들이 미래의 잠재 고객이기 때문에 후원을 한다고 볼 수 있다)

Pay it forward 문화

EvoNexus의 창업자인 Rory Moore를 비롯하여 어드바이저나 멘토들도 다들 ‘자원봉사’ 형태로 참여하기 때문에 월급이나 인센티브와 같은 금전적인 보상을 받지 않는다. 대부분은 샌디에고의 스타트업 베테랑들과 연쇄 창업자들인 이들이 돈도 받지 않고, 바쁜 시간을 쪼개서 EvoNexus의 인큐베이터 사업을 함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 샌디에고는 스타트업으로 성장한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샌디에고의 가장 유명한 기업을 꼽으라면 단연 Qualcomm (IT, 통신), Hybritech (제약), Illumina (유전체 진단장비)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 회사들이 1970-1990년대 사이에 스타트업으로 시작하여 지금 시총 수십조원의 대기업들로 성장했다. 저 회사들의 직원들이 또 따로 독립하여 세운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들이 수백개에 달해 지역 경제를 탄탄하게 지탱하고 있으며, EvoNexus의 어드바이저들은 이런 사실을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스타트업 생태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2. Pay it forward – 지금의 실리콘 밸리를 만든 바로 그 문화이다. HP의 CEO였던 윌리엄 휴렛 (William Hewlett)이 당시 고등학생이던 스티브 잡스에게 HP에서 주파수 계수기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스티브잡스는 픽사와 애플을 통해 성공한 후, 구글이나 다른 스타트업 창업자의 멘토가 되어주었으며, 이들은 또 다른 스타트업의 멘토가 되어 자기가 받은 혜택을 뒷사람들에게 조건없이 물려주는 ‘Pay it forward’ 문화를 샌디에고 EvoNexus의 성장에서도 엿볼 수 있다.

     – 관련 기사: Paying It Forward: Silicon Valley’s Open Secret to Success

  3. 처음에는 Volunteer로 스타트업에게 멘토링을 해주거나 어드바이저로 도와주다가, 상호 이해관계가 잘 맞아 떨어질 경우에는 그 회사의 Board Member로 영입되기도 하고, 가끔은 C-level 임원 혹은 Vice President등의 타이틀을 받고 정식으로 합류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런 경우에 EvoNexus는 관여하지 않고 당사자들간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다.)

사무실 임대료 및 유틸리티 (관리비) 비용도 무료제공

EvoNexus의 인큐베이터에 입주한 스타트업 회사들은 EvoNexus에 지분을 줄 필요도 없을뿐더러, 사무실 렌트비도 내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모델이 가능한 것일까?  이는 EvoNexus의 비즈니스 구조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Irvine Company라는 파트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Irvine Company는 미국의 유명한 부동산 개발 및 투자 회사인데, 남 캘리포니아에 있는 도시 Irvine 역시 이 회사 이름에서 따왔다.  (이 회사가 도시의 이름을 딴 것이 아니다.)  이 정도로 규모가 큰 Irvine Company는 여러곳에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데, 샌디에고 다운타운에 위치한 Irvine Company 건물의 한 층을 EvoNexus가 인큐베이터 공간으로 사용한다.

Irvine Company가 장소를 EvoNexus 측에 무상으로 제공함으로써,  이 곳에 입주하는 스타트업은 인큐베이터를 졸업하기 전까지 평균 18개월간 사무실 임대료 및 인터넷이나 수도, 전기 등등 기타 유틸리티 비용을 단 한 푼도 내지 않는다.자동차로 출퇴근 할 경우 건물 내 주차장의 주차비만 내면 된다고 하는데 이마저도 할인된 가격으로 가능하다고 하니 이보다 좋은 조건이 더 있을까? 이러한 비용 절약분에 대해 EvoNexus도, Irvine Company도 지분이나 다른 어떤 형태의 financial compensation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럼 Irvine Company는 왜 무상으로 EvoNexus에 건물을 제공하는 것일까?  아주 순진하게 생각한다면 Rory Moore의 취지에 공감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조금 약게 생각해 본다면, Irvine Company  역시 샌디에고, 어바인 지역에서 스타트업 붐이 일고 그 중 몇몇이 크게 성장하여 지역에 경제성장을 이끌면 젊은 유동인구가 많아지고 이는 곧 부동산 회사의 이익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비영리 단체를 지원하는 것이니 사업상 비용으로 처리하여 세금 혜택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고, Irvine Company는 이렇게 지역 경제, 커뮤니티의 성장과 발전에도 기여한다는 공익적인 메세지를 전할 수도 있다.  실제 Irvine Company의 회장인 Donald Bren이 운영하는 재단의 홈페이지를 보면 초,중,고등학교 및 대학교에 수천만 달러 이상을 기부했으며, 샌디에고에 있는 번햄 의학 연구소 (Burnham Institute for Medical Research)에도 연구비를 기부하는 등 다양한 기부활동을 펼쳐온 것을 알 수 있다. 현재까지 추산하기로 Donal Bren이 기부한 금액만 $1.3 Billion (한화 약 1조 4천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또한 Irvine Company는 자체적으로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및 코워킹 스페이스인 the Vine을 운영하고 있는데, EvoNexus와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다. EvoNexus 인큐베이터를 졸업한 회사들이 투자를 받고 성장하면서 새로운 장소를 찾게되면 자연스럽게 the Vine으로 입주하게끔 만들어 놓았다. the Vine은 Irvine Company가 운영하는 for profit 인큐베이터이므로, 한 달에 $350+ 정도를 내고 사용해야 한다. Irvine Company로서는 이미 한 번 걸리진 좋은 회사들을 자사의 인큐베이터에 입주시킬 수 있으니 EvoNexus 인큐베이터에 무상으로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 결코 손해는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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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vine Company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인큐베이터이자 코워킹 스페이스 the Vine. EvoNexus 인큐베이터와 같은 건물이 입주해 있다.

EvoNexus의 성과 (2009 ~ June 2016)

이렇게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으므로, 스타트업들의 입주 경쟁률은 매년 약 10:1 정도로 매우 치열하다. 시리즈 A  투자를 받기 전의 초기단계 스타트업들이 주 입주 대상인데, 2016년 7월 현재까지 총 1350여개 회사가 지원했고, 그 중 9.9%인 134개 스타트업만 입주할 수 있었다. 치열한 경쟁률도 놀랍지만, 샌디에고에서 EvoNexus 인큐베이터에 지입주하기 위해 지원한 스타트업이 1300개가 넘었다는 점도 매우 놀랍다.

2009년 EvoNexus의 설립 이후 지난 6년여 동안 EvoNexus 인큐베이터를 졸업한 스타트업들 대부분 (90% 이상)이 Angel 투자자/투자그룹이나 Venture Captial들로부터 시리즈 A 투자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총 17개의 스타트업이 피인수 (Acquisition)되었으며, 그 중 5개는 EvoNexus 인큐베이터에 입주하던 18개월 사이에 인수되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인큐베이터를 거쳐간 스타트업들이 받은 투자금과 피인수 대금을 합치면 $1Billion (한화 약 1조 1천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2016년 6월 말 통계이므로 이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늘어갈 것이다)  샌디에고에서 제대로 한 번 스타트업 붐을 일으켜보겠다는 EvoNexus CEO인 Rory의 목표가 실현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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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현재 EvoNexus 인큐베이터에 45개의 회사가 입주해 있으며, 인큐베이터를 거쳐간 스타트업을 통해 총 $1.041 Billion에 달하는 투자와 M&A deal이 이루어졌다. 여기엔 17건의 M&A도 포함되어있다.

Lean Startup 처럼 운영되는 EvoNexus의 인큐베이터

현재 EvoNexus 인큐베이터는 샌디에고 다운타운, 라호야 (UCSD 근처), Irvine 이렇게 세 군데에 있는데, 샌디에고 다운타운 입주 스타트업은 소프트웨어나 앱 개발 회사들이 많고, 라호야쪽은 UCSD와 Salk, Scripps등의 유명한 생명과학 연구소들이 밀집해 있는 만큼 제약, 메디컬 디바이스, 하드웨어 스타트업 등이 주로 입주해 있으며, Irvine은 2015년에 열었는데 현재는 반 반 섞인 정도라고 한다.  하나 인상적인 점은 세 곳의 인큐베이터를 운영하는 풀타임 인력이 총 6명 뿐이다. EvoNexus 담당자의 말을 빌리자면, EvoNexus도 하나의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입주한 스타트업들처럼 최대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Lean’하게 운영한고 있다고 한다. 정말 맞는 말이다.  스타트업을 멘토링하고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겠다는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부터 자금과 리소스가 부족한 초기 스타트업처럼 운영되어야 한다. 그래야 입주해 있는 스타트업에게 모범을 보일 수 있고,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소위 말하는 ‘헛바람’이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공한 창업가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된 “순수 민간 비영리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EvoNexus. 조금은 독특하고 무모한 모델로 시작했지만, 6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샌디에고 스타트업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대표 인큐베이터로 성장한 EvoNexus가 앞으로도 더욱 많은 스타트업 성공 스토리를 이끌어 내기를 기대해본다.

샌디에고 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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